[오지혜의 내 인생의 책]⑤ 작별일기 - 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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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빚을 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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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데 죽지 않는 아니, 죽어지지 않는(거기다 돈도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낙태와 존엄사와 함께 하루빨리 공론의 장으로 나와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노인요양.

가난한 노인을 돌보는 노인요양사가 직업이면서 진보정당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일하는 정당인이기도 한 저자 최현숙은 이 책 이전에도 자신이 돌보는 노인들을 관찰하고 얻은 각성과 혜안을 책으로 펴낸 바 있으나, 이번엔 본인의 노모가 노인성 치매를 겪고 천천히 해체되며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일지를 쓰듯 풀어냈다. 비교적 최고 수준의 요양원임에도 부모 입장에선 수용소나 다름없다 느낀다는 것, 늘 아프고 늙은 노인들의 수발을 들면서 감정노동까지 해야 하는 요양사들의 애환, 우리 사회 복지현황과 요양등급 실태 등을 기록한 걸 따라가게 되면 독자는 그야말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이라 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죽어가는 부모를 돌보고 부대끼며 어릴 때 알았던 부모와 딴판인 모습들을 발견하고 ‘내 부모’가 아닌 ‘한 인간’을 기록한다. 그러면서 힘든 삶을 살아낸 동력이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었나 싶을 정도로 미움이 컸던 자신이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는 모습을 통해 환갑을 훌쩍 넘긴 자신이 한 줌 남은 성장을 기어코 해내고 있음을 고백한다.

밑줄 긋느라 색연필이 닳을 정도로 작가 최현숙의 문장도 아름답다. 부모의 노년과 병상일지를 기록하고 공개한다는 것은 부모뿐 아니라 형제자매 모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예민한 작업인지라 책 말미에 저자는 허락해준 가족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 나도 일면식 없는 그분들께 감사해야겠다. 저자의 가족사와 애증을 훔쳐보며 나도 내 부모를 다시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