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판 감독 ‘직권’ 없어 직권남용죄 판단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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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개입’ 임성근 판사 1심 무죄

사법행정권자 직권 좁게 해석
당시 임 판사 개입했던 재판
결정 번복·판결문 수정 불구
“재판부 판단에 영향 안 미쳐”

검찰 “기이하고 위험한 결론”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임성근 판사에게 14일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사법행정권자에게는 개별 법관의 재판업무에 관한 직무감독권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판단대로라면 윗선이 일선 재판에 개입해도 형사처벌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임 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개별 법관의 ‘재판 업무에 관한 감독권’은 사법행정권자의 권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록 관리나 문건 접수 등 ‘재판 관련 행정사무’는 감독의 대상이 되지만,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판결·결정·명령 등 ‘재판 업무’는 감독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사법행정권자 직권의 범위를 좁게 해석한 것이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일단 ‘직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재판개입이 죄가 되려면 재판에 대한 감독권의 존재가 인정돼야 했다.

검찰은 법관의 막말, 고의 재판 지연, 편파 진행, 인권침해 등을 막기 위해 사법행정권자에게는 재판에 대한 감독권이 존재한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이러한 부분은 감독권이 아니라 징계권의 행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절차상, 실체적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사전에 시정을 구할 수 없고, 사후에 심급제도로만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게 헌법 등의 근본정신”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또 “(임 판사의 재판개입이)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죄의 형사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범죄구성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라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했다. 재판부도 임 판사가 위헌적인 재판개입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직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고위공직자의 불법행위를 면책하는 결과를 낳았다.

검찰은 재판부가 직권남용죄 법리를 오해했다고 반발했다. 검찰은 “이번 판결은 직권이 남용된 결과를, 남용된 직권 그 자체와 혼동한 것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 “판결의 논리에 따를 경우 법원행정처, 법원장, 형사수석부장이 법관에게 재판 결론, 판결 이유 등을 변경하도록 지시해 소송당사자인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는 기이하고도 위험한 결론에 이른다”고 했다.

재판부는 임 판사의 재판개입과 일선 재판부의 결정 번복, 판결문 수정 등 사이에 인과관계도 없다고 판단했다. 임 판사가 재판장에게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처리하도록 요청했다 하더라도, 합의부는 판사 3명의 합의에 따라 심판하기에 임 판사 요청이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직권을 남용했더라도 의무 없는 일을 시켰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결과가 발생해야 범죄가 성립한다는 게 대법원 입장이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최고법인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다고 스스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을 위반한 것이 없다는 논리를 그 누가 납득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2017년 3월 사법농단 사건이 촉발된 이후 법원 안팎에선 연루 법관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엄격한 법 해석의 잣대를 들이대는 형사처벌과 달리 탄핵은 헌법에 위반됐는지를 따지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10월 법관 탄핵을 꺼냈지만 이후 추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