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모든 것을 바꿔놓은 그의 ‘첫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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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찰스 만 지음·최희숙 옮김
황소자리 | 784쪽 |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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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10월12일 아메리카의 서인도제도에 첫발을 내디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자신을 후원한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의 스페인 왕실 깃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선원들의 일부는 땅에서 금을 찾고 있고, 원주민들은 나무 뒤에서 상륙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존 밴덜린(1775~1852)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파리 유학을 다녀온 화가이다.

‘집밥’을 떠올려보자. 김치가 한쪽에 놓여 있고, 당근으로 색을 더한 감자채볶음 옆에는 가지무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프라이에는 토마토케첩이 뿌려졌을까. 먹거리에 예민하다면 장을 볼 때부터 원산지를 살펴보고, ‘로컬푸드’인지도 따져봤을 법 싶다. ‘로컬’이라니, 사실 우리의 밥상은 그야말로 초국적이다. 고추는 아메리카대륙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유입됐고, 감자와 토마토 역시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다. 가지는 남아시아, 당근은 유럽에서 건너왔다. ‘세계화 시대’니 새삼스럽지 않아 보이지만, 이런 변화가 이미 15세기 말 역사적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1493>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즉 유럽 식민개척자들이 아메리카 땅에 발을 디딘 이후 전 지구적으로 전개된 변화상을 추적하는 책이다. 책에선 균질화, 동질화된 인류의 삶을 의미하는 신조어 ‘호모제노센(Homogenocene)’으로 이 변화를 설명한다. 흔히 전 세계의 삶이 긴밀하게 맞물리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최근 수십년 동안 벌어진 갑작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다. 학교에서 익히 배운 국왕과 국가 중심의 역사가 아닌 콜럼버스의 항해가 가져온 사회 전반의 경이로운 변화를 살펴보고, 더 나아가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단절돼 있던 두 세계가 이어지면서 ‘정신착란’과 같은 대격변이 펼쳐지게 됐다는 것이다.

1492년 10월12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섬(현재의 도미니카공화국)에 첫발을 내딛는다. 콜럼버스가 최초로 건설했던 기지 ‘라 이사벨라’는 오늘날 거의 잊혔다. 콜럼버스 역시 존경의 대상, 기념할 만한 인물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제국주의의 앞잡이였고, 아메리카의 원래 거주자들에게 재앙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근현대사의 다른 각도에서, 막대한 변화를 몰고 온 인물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온 세상의 에코시스템을 뒤섞고 충돌시킨 ‘콜럼버스적 대전환’이 공룡 멸망 이후 가장 중대한 생태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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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앞잡이이자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재앙이었던 콜럼버스를
‘공룡 멸망 이후 가장 중대한 생태적 사건’을 낳은 인물로 재조명한 책
담배·가축·감자·말라리아·노예무역…인간 유전자의 섞임까지
나비효과처럼 꼬리를 무는 재앙과 선물을 따라가면 오늘날의 세계가…
촘촘하게 짜여진 새 이야기와 다른 시선…‘대전환’은 현재진행형이다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것은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만이 아니었다. 가지각색의 벌레와 식물, 포유류, 그리고 미생물까지 함께 아메리카에 입성했다. 유럽인 원정대는 소, 양, 말 같은 가축들은 물론이고 사탕수수(출생지는 뉴기니), 밀(중동), 바나나(아프리카), 커피(아프리카)와 같은 작물을 새로 들여놓았다. 소와 양들은 단단한 이빨로 아메리카대륙 수풀을 밑동까지 먹어치웠고, 토종 관목들이 새로 싹틔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카리브해의 숲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스트레일리아산 아카시아, 에티오피아 관목, 중앙아메리카의 로그우드로 대체된다. 그 아래 달음질치는 인도산 몽구스는 도미니카의 뱀들을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아프리카에서 플랜테이션과 함께 건너온 진드기들은 천적이 없는 새 땅에서 ‘생태적 해방’을 이루고, 진딧물 배설물을 좋아하는 불개미도 덩달아 폭증한다. “생태학적 아수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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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가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가 그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초상(1519).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대상은 인류 자신이었다. 수십만명으로 추정되는 히스파니올라섬 타이노족의 수는 콜럼버스의 첫 항해로부터 22년째인 1514년 2만6000명으로, 다시 34년이 지난 후에는 500명으로 줄어든다. 스페인의 잔혹 행위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 원인은 과거 아메리카대륙에 없던 천연두, 독감, 간염, 홍역, 뇌염, 폐결핵 등 각종 전염병이 퍼진 탓이다. 16~17세기 신종 병원균이 아메리카 전역에 퍼지면서 원주민 인구 4분의 3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인구학적 대참사였다. 하지만 최신 연구에 따르면 절멸된 줄 알았던 타이노족의 DNA는 다국적 유전자의 가닥에 얽혀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의 이목구비를 지닌 도미니카인 핏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양상으로 진행된 상호작용의 연쇄다.

저자는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시선을 옮겨 필리핀 마닐라의 구도심에 있는 한 청동 조각상 앞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오늘날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최초 근원지 기념물로 매우 유력한 조각상이다. 주인공은 스페인 탐험가이자 근대 마닐라의 창립자 미구엘 로페즈 데 레가스피. 중국과 항구적인 교역을 수립하면서 전 지구적 글로벌 무역망 건설의 길을 처음 열어젖힌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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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뒤에서 말을 잡고 서 있는 인물이 아프리카 노예 출신 후안 가리도로 추정된다. 그가 멕시코시티의 예배당 뒤편에 심은 세 알의 밀이 아메리카 본토로 퍼져나간다(왼쪽 사진). 마닐라에서 끌려온 중국인 미술가 에스테반 상존은 18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표하는 조각가가 됐다. 그의 조각상 ‘멸시당하는 예수’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의 명물이다. 두 사람은 그 당시 국제적 교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황소자리 제공

1572년 봄. 세 척의 중국 정크선이 필리핀에 모습을 드러냈다. 배에는 실크와 도자기 등 최고급 중국 상품이 가득했다. 레가스피가 가지고 있던 것은 안데스산맥의 포토시 은광(은 함유율이 50%에 달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잭팟이었다)에서 가져온 스페인의 은. 은본위 통화제도를 도입한 중국의 은에 대한 굶주림과 유럽의 실크와 도자기에 대한 굶주림이 맞아떨어지면서 교역량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훗날 ‘갤리온 무역’으로 알려지게 될 이 교역은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좀 덜 직접적으로는 아프리카까지 하나로 연결해냈다. “단 하나의 교역망 안에 이처럼 넓은 지표면이 편입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국의 화폐가 오랑캐들 손에 맡겨지게 된 중국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유럽에선 제조업이 붕괴 위기에 처하는 등 정치사회적 변화가 이어진다. 이전 세상과 분명한 선을 긋는, 근대의 동이 터오른 것이다.

저자는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오늘날 세계를 주조해낸 물건과 사건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이를테면 담배 재배와 말라리아와 노예무역의 연쇄 같은 것들. 영국인 최초 정착지였던 미국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선, 나가사키부터 이스탄불까지 전 세계적 인기를 얻은 타바코(카리브해의 니코티아나 타바쿰) 재배가 시작된다. 니코티아나 타바쿰은 전혀 예상치 못한 미생물을 끌어들인다. 아메리카에서 파괴적 영향력을 행사한 ‘말라리아’다. 당시 수익률이 1000%에 달했던 담배 농사를 위해 계약이민자들이 왔지만 대부분은 내리자마자 죽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에선 말라리아가 유행하고 있었고, 이들이 옮겨온 말라리아 병원균의 숙주가 되는 원충이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것이다. 새로운 노동력을 찾던 식민개척자들이 찾아낸 것이 말라리아에 강한 아프리카 중서부 출신 흑인이었다. ‘노예무역’의 출발이다. 추위에 약한 말라리아 매개체의 서식지를 기준으로 미국에선 남부와 북부가 나뉘고, 남아메리카에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계를 이루게 된다. 말라리아 벨트가 노예제도 벨트가 된 것이다.

감자는 “제국주의로 가는 길”도 활짝 열었다. 우리가 흔히 먹는 감자 ‘솔라넘 튜버섬’의 출생지는 안데스산맥이다. 덩이줄기 작물인 감자는 생산성이 뛰어나다. 1760년대 영국 동부에서 밀, 보리 혹은 귀리 연평균 수확량이 에이커당 588~680㎏이었던 데 반해 감자 생산량은 1만1605㎏에 달했다고 한다. 다른 음식을 일절 먹지 않고 감자만으로 167일을 버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영양도 탁월하다.

‘콜럼버스적 대전환’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감자를 선물한다. 인구 과잉과 식량 부족 문제를 경고한 ‘맬서스의 덫’을 뛰어넘은 것도 감자의 도입 덕분이었다고 한다. 결국 감자로 인한 기근 종식 덕에 유럽에는 정치적 안정이 찾아왔고, 아메리카에서 온 은을 활용해 부유해진 유럽은 전 세계로 힘을 확장하게 됐다. 책에선 “감자의 도입은, 근대 문명을 견인한 증기기관의 발명에 필적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전한다.

‘나비효과’처럼 꼬리를 물고 전개되는 변화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오늘날의 세계에 이른다. 인디언과 아프리칸이 연대하여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 아프리카 출신 노예로 팔려가 기독교도 스페인 정복자로 거듭난 후안 가리도나 마닐라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끌려간 중국인 미술가 에스테반 상존과 같은 주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메트로폴리탄’들, 고무나무를 둘러싸고 벌이는 서구 각국의 이권 싸움 등 헤아릴 수 없이 촘촘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는다. ‘콜럼버스적 대전환’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