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책]만물과 사랑을 나누던 마음, 어른이 되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by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군침을 삼킨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성가신 존재로 전락한 눈이건만, 아이들은 기대에 부푼다. <우리 눈사람>에 나오는 아이들도 그렇다. “눈은 묵직하고 진득하며,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눈을 묘사한 대목만 읽어도 얼마나 눈을 반겼는지 느낌이 온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말이지, 눈사람을 만드는 거야.” 서둘러 두꺼운 옷을 챙겨입고 나간다.
우리 눈사람
M. B. 고프스타인 지음
이수지 옮김
창비 | 40쪽 | 1만3000원
큰아이는 동생에게 눈사람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한 번 눈을 굴릴 때마다 얼마나 빨리 커지는지 깜짝 놀란다. 가장 중요한 규칙은 “깨끗한 눈 위에 굴리는” 것이다. 진흙이나 나뭇가지를 묻혀서는 안된다. 정성스럽게 만든 눈사람을 두고 들어오는 길은 못내 서운하다. 급기야 슬퍼진다. 점점 어두워지는 바깥에 눈사람이 혼자 서 있기 때문이다. “저 눈사람 만들지 말걸.” 아이는 끝내 눈물바람을 한다.
“고작 그런 걸로 울면, 앞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엄마는 한마디했지만, 아이는 아빠와 결국 밖으로 나간다. 비록 흙과 나뭇가지가 많이 묻었지만 또 하나의 눈사람을 만들어 옆에 세워준다. “이제 우리 눈사람도 둘이 함께 있는 거야.” 동생은 몹시 기뻐한다. 따뜻한 색감의 파스텔화는 마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일기를 보는 듯하다.
이름을 알고 싶어
M. B. 고프스타인 지음
이수지 옮김
창비 | 40쪽 | 1만3000원
아이들은 세상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공감하고, 아껴준다. 길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나뭇잎 하나, 꿈틀대는 지렁이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런 마음은 작가의 또 다른 책 <이름을 알고 싶어>에도 담겨있다. “세상 모든 이름을 알고 싶어”라는 바람은 세상 모든 것들을 허투루 여기지 않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돌과 바위의 이름, 석영, 이판암, 화강암, 석회암, 서로 다른 이름을 알고 싶어.”
파스텔로 그린 섬과 호수는 색깔을 지우면 똑같아 보인다. 별과 풀꽃, 하늘과 강, 산과 바다도 그렇다. 우리가 조금 더 닮아 있다는 것을, 서로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조용하게 응시하도록 도와준다.
만물과 사랑을 나누던 마음은 어른이 되면서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는 수상소감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을 돌아보자고 했다. 작가 역시 말한다. “모두들 하나하나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따뜻하게 맞아 주고 싶어. 내가 사는 모든 순간, 오직 이 땅만이 나의 집이기에.”
작가는 질박하고 절제된 그림과 문장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울림을 던져준다. 1977년 칼데콧 명예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가의 작품은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그림책 <파도야 놀자> 등을 펴낸 이수지 작가가 직접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