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마스크 대란과 국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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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우리 가족은 마스크전쟁을 치렀다. 홈쇼핑에서 ‘KF94 보건용 마스크’를 개당 598원에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사전준비에 들어갔다. 홈쇼핑의 PC홈페이지, 모바일, 리모컨, 전화 주문 등을 점검했다. 네 식구는 각자 역할을 담당했다. 전날 홈쇼핑 구매가 좌절되자 나는 약국과 대형 유통점 등을 돌았다. 겨우 KF94 마스크 7개를 개당 2500원에 샀다. 아내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개당 3500원에 10개를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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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홈쇼핑은 오전 11시20분 방송 예정이었다. 우리는 오전 10시50분부터 상담전화를 넣었다. PC홈페이지는 서버다운 문제로 불가하다는 공지가 떴다. 휴대폰에 집전화까지 전화기 5대를 돌렸다. 끊어지기 일쑤였다. 연결된 휴대폰도 대기번호는 130번을 넘겼다. 다행히 11시20분경 상담원과 연결됐다. 아내는 다급히 주문에 들어갔다. 상담원은 들리지 않는다며 끊었다. 회신은 없었다.

급히 홈쇼핑 리모컨으로 주문을 시작했다. 수량과 결제방식 등 입력하고 확인까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휴대폰에 ‘1세트 100개 주문완료’ 안내문자가 떴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 느낌 자체가 생경했다. 마스크가 이토록 중요했던가?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은 계층이 다른 사람들이 만날 수 없는 구조에서 과외라는 특별한 통로를 통해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나 한쪽은 다른 쪽을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로 구분하며 경멸했다. 계층구조 아래에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범위에서 교류할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범위는 매우 좁을 것이다. 선 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고 따라서 이해도 공감도 없다. <기생충>에서 박 사장은 누군가가 이 선을 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배가 이미 침몰한 상황에서 ‘구명조끼 입은 학생들을 발견하기 어려운가?’라고 물었다.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사회구조는 여전하다. 서민들은 하루를 초만원 지하철에서 시작한다. 이들에게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한 마스크는 필수다. 제값에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6배의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국가 지도층이 지하철을 타는 서민들의 냄새를 모른다. 유력한 대권후보인 이낙연 전 총리는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하는 방법을 모른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길거리표 어묵을 어떻게 먹는 줄 모른다. 지도층이 서민의 일상을 알 리 없다. 코로나19 공포를 과도한 걱정이라 하는 것과 같다. 모두 현실의 공포를 체감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헌법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을 국가 의무로 규정한다. 국민은 이러한 기능을 국가에 위임하고 통치에 따른다. 그런데 국가가 고유 기능을 저버린다면 국민에게 무슨 존재이유가 있는가. 감염병에 떨고 있는 국민들에게 적절한 조치 없이 과도한 걱정을 하지 말라는 말은,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 서민에게 마스크와 손세정제는 빵보다 더 시급한 것일 수도 있다.

14일 0시 기준 중국 내 누적 확진자는 6만3851명이고, 사망자는 1380명, 한국 확진자는 28명이다. 국내 확진자 증가세는 주춤하지만, 지역사회 감염단계로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우려를 거두기 쉽지 않다. 푸성귀를 파는 노점상과 폐지 리어카를 끄는 노인의 때 묻은 면 마스크가 유난히 눈에 띈다.

현대 국가의 역할 중 하나는 공공재 공급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현 상황에서 마스크는 공공재라 할 것이다. 경제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의료용품은 지급되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제값에 구입할 수는 있어야 한다. 서민들은 가진 자의 견고한 선을 넘지 못한다. 서민들은 마스크를 찾으면서국가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