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언어로 사람을 조종할 능력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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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콘
맥스 배리 지음·최용준 옮김
열린책들|592쪽|1만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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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는 한 비밀스러운 아카데미에서는 재능 있는 학생들을 모아 언어의 숨겨진 힘과 타인을 조종하는 법을 가르친다. 언어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특수능력자 ‘시인’들의 이름은 버지니아 울프, 샬럿 브론테, T S 엘리엇 등이다. 고상한 이름과 달리 이들은 단어를 통해 사람을 공격하고 살해한다.

호주의 SF 작가 맥스 배리는 휼렛 패커드에서 컴퓨터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데뷔작을 쓰고, 시뮬레이션 게임을 직접 만들기도 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게임, 언어, 국제정치 등 다양한 관심사를 종횡무진 오가는 소설을 선보여온 그는 <렉시콘>에서 특수능력자 집단 ‘시인’을 내세워 언어가 갖는 설득력과 힘, 현대사회의 정보화와 빅데이터 등에 대한 문제를 절묘하고도 영리하게 엮어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인’이라는 비밀 단체는 언어 시스템을 연구해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굴복시키는 방법을 알아낸다. 거리에서 속임수 카드게임을 하며 연명하는 에밀리는 이 비밀 조직에 뽑혀 교육을 받고, 또 다른 주인공 윌은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납치된다. 평행선을 달리던 둘의 이야기는 호주의 작은 마을 주민들이 몰살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로 만나고, 배경에 도사린 거대한 음모가 드러난다.

소설은 사생활 보호, 빅브러더, 빅데이터 같은 문제들을 드러낸다. 거대 정보기업 등이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통제·조종하려는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설득은 이해에서 비롯되지. 우리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습득하고, 그 지식을 상대에게 적용하여 상대를 굴복시키지”라는 예이츠의 말은 현대사회 정보기업에 적용해도 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