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13년 전 2·13 합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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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3년 전 2007년 2월13일,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합의가 있었다.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진 2003년부터 6자회담이 밀도있게 전개되었고,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 핵문제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도출할 수 있었다. 9·19 공동성명은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프로그램의 포기와 함께 이를 달성하기 위한 참가국 간의 상응조치를 담은 포괄적인 합의였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 이해관계국들이 모두 서명한 매우 값진 결실이었다. 그러나 합의 직후 불거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먹구름이 조성되었고, 미국의 이러한 조치에 반발한 북한은 1차 핵실험이란 강수를 두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공백을 깨고 도출된 것이 바로 2·13 합의이다. 9·19 공동성명을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하기 위한 초기조치가 마련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는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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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합의는 시한을 담은 매우 구체적인 합의이다. 60일 이내에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쇄 및 봉인과 IAEA의 사찰을 받으며 나머지 나라들은 중유지원을 하기로 하였다. 북·미,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한 양자회담의 개시를 통해 신뢰관계 구축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초기조치가 원만하게 이뤄질 경우 다음 단계로서 북한은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고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취하며 관련 당사국들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돌이켜보면 2·13 합의는 주변국들이 북한을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대화와 공존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첫 조치를 담은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결실이었다. 이후 2007년 10·3 합의, 북한의 영변 원자로 냉각탑 등의 폭파가 있었지만 핵신고의 검증방식을 두고 북·미 간에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여기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뇌졸중, 미국의 정권교체,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변화에 맞물려 2·13 합의의 정신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 수십년간 한반도 분단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매우 훌륭한 합의들을 이룬 바 있다. 남북 간에는 기본합의서와 6·15 공동선언, 10·4, 4·27 판문점 선언들을 도출한 바 있다. 비핵화에 있어서도 9·19 공동성명, 2·13 합의를 포함하여 불과 2년 전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까지 매우 중요한 합의들을 모색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남북관계 또한 획기적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한반도에는 냉전구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 간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비판론자들은 북한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비판론자들은 미국, 중국, 심지어 한국조차도 한반도 분단구조를 정치적, 이해관계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핵개발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있는 북한에 일관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호 간의 동상이몽적 사고들로 인하여 2·13 합의, 10·3 합의와 같은 구체적인 시간계획을 담은 합의조차도 이행되지 못했던 것이 매우 안타깝다.

북·미 간 싱가포르 합의에서 핵포기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적대시정책의 완전철회를 주장하면서 대화에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부터는 정면돌파전, 결사항전을 선포하고 제재하에서 끝까지 버티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강경파인 리선권의 외무상 기용도 이러한 맥락에서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국경의 모든 왕래와 출입을 단절하고 코로나19의 국내 유입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대선이 끝날 때까지 대북 접촉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등 미 고위관리들의 메시지는 북한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높다. 그간 북핵 문제를 실무적으로 다뤄온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국무부 부장관으로 옮기고 램버트 특사, 웡 부대표도 다른 자리로 옮긴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이 끝날 때까지 대북 협상에서 현상유지를 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은 고도화될 것이고 북한 협상칩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양적, 질적으로 확대된 북한 핵의 비확산에서 타협할 경우 한반도의 비핵화는 요원해진다. 북한 핵이 고도화되기 이전 영변 핵시설의 폐기와 과거핵의 검증을 위해 구체적으로 시한까지 세워놓았던 불과 13년 전의 2·13 합의가 차질 없이 이행되었다면 어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