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진의 샌프란시스코 책갈피]차근차근 짚어본 할리우드 ‘차별의 역사’…미국 영화계 문제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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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영화보다 불편하다
낸시 왕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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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9일(현지시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오스카) 4관왕을 달성하고,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이 아시아인 감독으로는 대만 이안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감독상을, 외국어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타면서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던 2019년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도 그랬듯이 한국 영화팬들에게 너무나 기쁜 소식이지만, 칸 영화제보다 아카데미 수상 소식에 외신들이 이토록 주목하는 이유는 그동안의 시상식에선 백인 남성 중심의 수상 목록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다.

1927년 하반기 영화부터 주어진 아카데미 시상식은 올해로 92번째였고, 그동안 백인이 아닌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일은 봉준호 감독을 포함해 총 8번, 남성이 아닌 감독이 상을 받은 일은 단 한 번 있었다. 작품상의 경우 외국어영화가 후보에 오른 것부터가 11번에 불과하고, <기생충>이 최초의 수상작이다.

낸시 왕 유엔의 <필름 불평등 (Reel Inequality)>은 할리우드의 인종 문제를 배우에 집중해서 다룬 책이다. 아카데미의 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후보 20명이 모두 백인이었던 2015년과 2016년. 어떻게 사람들이 ‘순백오스카 (#OscarSoWhite)’ 해시태그를 이용해서 아카데미 회원들의 백인 선호를 지적하고, 윌 스미스를 비롯한 흑인 배우들과 스파이크 리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이콧하며 변화를 촉구했는지 되짚으며 시작한다.

할리우드 역사를 차근차근 짚어나가며 초기에 어떻게 백인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인 척 연기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차별을 지적받았을 때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특정 인종에 편향된 캐스팅을 지속해왔는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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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이 아닌 배우가 주연이 될 수 있었던 시기가 온 다음에도, 그런 배우들의 역할은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벗어난 역할에서 명연기를 보여줘도 아카데미 같은 시상식에서 인정받기는 어려웠다는 것을 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흑인 배우들의 아카데미 수상작이 대부분 ‘전형적인’ 역할들, 하녀, 범죄자, 타락한 경찰 등이었음을 하나하나 꼽아주었을 때, 한 해 한 해 수상자 발표를 보았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구조적인 인종 문제를 본 듯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문제는 할리우드뿐만의 얘기는 아니다. 2016년 ‘해리 포터 시리즈’의 후일담을 다룬 연극 <저주받은 아이>에서 헤르미온 역을 흑인 배우가 하게 되었을 때, 2014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신데렐라>에 흑인 신데렐라가 등장했을 때, 여지없이 논쟁이 있었다. 이 책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바로 올해 2020년 영국 아카데미(BAFTA) 배우상 후보는 모두 백인이었다. 미국 영화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2019년 우리나라 다문화 가구원이 100만명을 돌파했고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그중 누군가가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 영화를 보고 자랐다며 감독상 수상 소감을 말하는 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