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재난이 세상을 멈춰 세울 때 / 김찬호

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120/165/imgdb/original/2020/0214/20200214502318.jpg

김찬호 ㅣ 성공회대 초빙교수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1950년대에 가수 권혜경의 노래로 유행했던 곡 ‘산장의 여인’의 노랫말이다. 반야월 선생이 마산의 결핵 요양소에 위문 공연을 갔다가, 객석에서 어느 여성 환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가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위생이 매우 열악했던 시절의 서정을 담은 노래인데, 요즘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와닿는다.

지구촌에 감염 공포가 만연하는 가운데 매일 속보가 이어지고 있다. 확진, 격리, 폐쇄, 휴업, 입국제한 같은 용어가 익숙해졌고, 비상 국면이 상시적으로 이어진다. 유전자마저 개조한다는 생명공학도, 사물의 운영 체계를 혁신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도 이 환란 앞에서는 아직 속수무책이다. 이해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 가능성을 비약적으로 높여온 근대문명은 오히려 불확실성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사실과 추정,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지는 가운데 불안 심리와 선정적 정보와 과잉 대응이 악순환한다.

재해는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사회적 신뢰의 수준이 확인되고, 공동체와 여러 조직의 저력이 적나라하게 비교되고 있다. 소통과 의사결정과 실행 과정에서 신속함과 정확함을 기하지 못해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이 빈번하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의 리더십과 행정 시스템의 성능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 일시적인 대응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기후 위기와 함께 여러 재앙이 이어질 텐데, 예를 들어 중증외상센터조차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공공부문을 어찌할 것인가.

재해는 삶의 진실을 일깨워준다. 그토록 맹렬하게 추구해온 경제성장이지만 생명의 안위보다 앞세우지는 못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세상사의 마땅한 우선순위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또한 우리의 삶이 개인이나 국가의 수준을 넘어서 드넓은 그물망으로 존립한다는 것, 거대한 난관 앞에서 인류는 국경을 넘어 운명공동체가 된다는 것, 그래서 경쟁이 아닌 연대가 요청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사들이 얼마나 고마운지도 알아차린다. 도시를 활보하고 공연이나 집회를 하고 여행을 가고….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청결과 품위를 갖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과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는가. 그동안 당연시되어온 삶의 전제조건들을 검토하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공공 영역과 경제 구조 그리고 욕망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환경을 불결하게 만드는 습관도 청산하자.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길바닥에 함부로 침을 뱉는데, 이제 기침조차 위험시되는 상황에서 섬찟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업무와 활동이 중지되면서 생계에도 막대한 지장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재난이 세상을 멈춰 세울 때 그 공백을 창조의 여백으로 삼은 사람이 있다. 물리학자 뉴턴이 23살이었던 1665년 런던에 전염병이 발생했고, 그가 재학 중이던 케임브리지대학도 휴교에 들어갔다. 이후 20개월 동안 뉴턴은 시골집에 머물며 연구에 몰두했는데, 그 시기에 미적분학과 중력 법칙 등의 윤곽을 잡았다고 한다. 고립과 은둔 속에서 정신을 확장한 셈이다. 지금의 난국에서 우리는 무엇에 눈뜰 수 있을까.

비상사태는 일상의 속살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기존의 상식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존재의 무한한 사슬로 얽혀 있는 삶을 자각하는 것, 우리는 서로의 일부라는 것, 그 마음의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서 사회적 면역력은 배양된다.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