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일가족 비극' 한의사 부부 병원 가 보니... 주변선 "상상도 못 했다"
by 황지윤 기자 신재현 인턴기자입력 2020.02.14 18:19 | 수정 2020.02.14 19:44 '내부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휴진입니다.'
14일 오후 1시 경기 김포시 'A한방병원' 건물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몇 분 뒤 엘리베이터 앞에 선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 낮은 목소리로 숙덕거렸다. 'A한방병원'이 있는 6층을 누른 이들은 "어린 애들까지… 어쩜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러게 말이에요" 같은 말을 나지막이 주고받았다.
전날 서울 양천구 목동 한 아파트에서는 이 병원 한의사 윤모(35)씨와 아내 강모(42)씨, 아들(5), 딸(1)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윤씨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나머지 가족은 자택 침대에 가지런히 누운 채 숨져 있었다. 흉기에 의한 외상(外傷)은 발견되지 않았고, 강씨와 아들·딸 목에 눌린 자국이 있다고 알려졌다.
윤씨는 작년 12월 A한방병원을 열었다. 아내가 병원장이던 인천 'B한방병원'을 확장해 새 지점을 낸 것으로 보인다. A병원은 보증금 5억원에 월 임대료 약 2500만원이었다.
A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윤씨는 새로 개업한 병원 인테리어에 9억원을 들였다. 자금 상당 부분은 대출로 조달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없던 빚 10억여 원이 생기면 누구든 부담스럽겠지만, 윤씨가 채무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윤씨 아버지는 경찰 조사에서 "아들이 인테리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병원 관계자는 "(사건이) 단순 채무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윤씨 아버지는 아들 병원의 행정실장으로 일해왔다.
윤씨는 사건 전날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정시 출근하고 퇴근했다고 한다. "오전 9시쯤 출근해 외래 진료를 보고 오후 7시쯤 진료를 마치고 셔터를 내리고 집에 갔다"는 게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병원 관계자는 "사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병원 직원들도 "원장님이 그럴 분이라고 생각 못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병원은 하루 평균 외래 진료 환자 10명 정도에 입원 환자 20명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직원은 약 20여 명 정도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병원인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윤씨는 평소 병원 직원들에게 가족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병원 직원은 "원장님이 같은 대학교 한의학과 7세 차이 연상연하 CC(캠퍼스 커플)에서 결혼까지 골인한 걸로 안다"고 했다. 책상 위에 가족사진이 있지는 않았고, 직원들에게 가족 이야기를 하는 일은 없었다.
윤씨의 지인 한의사들도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윤씨는 한의사들이 만든 한 아이스하키 동호회에서 2014년부터 활동해왔다. 유니폼을 맞추기 위해 동호회 온라인 카페 게시글에 '키 168㎝ 몸무게 60㎏' 등을 올리는 등 모임에 종종 참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당시 팀 주장이었던 한의사 이모씨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간간이 얼굴 비췄지만, 지난해부턴 소식이 뚝 끊기고 운동도 안 나왔다"며 "너무 소식이 없어서 요즘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던 차에 비보(悲報)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고도 덧붙였다.
같은 동호회 지인 한의사 정모씨는 "지난해 만나서 술 한 잔 했다. 개원 후에 경제적으로 힘들어했다는 얘기는 들었다"고 했다. 동호회 코치였던 전모씨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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