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성이 잘 키운 ‘거리의 만찬’을…왜?
[황진미의 TV 톡톡]
“여성 세 명이 모여서 사회를 본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우리만큼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할 말은 하고 끝냅시다.” “여자 셋이 모이면 사회가 바뀐다.” 1월19일에 방송된 <거리의 만찬>(한국방송2) 마지막 회에서 세 명의 진행자들이 한 말이다. <거리의 만찬>에서 ‘세 명의 여성 진행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짚는 뼈 있는 말들이다.
이번 <거리의 만찬>의 진행자 교체는 생뚱맞다. 시청률도 잘 나오고, ‘양성평등 미디어상’을 수상할 만큼 프로그램이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진행자들의 소통능력도 탁월하여, 고발 위주의 프로그램과는 결을 달리하는 섬세한 시선이 돋보였다. 진행자들 간의 화합도 좋아서 “촬영장에선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 5년도 같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시즌제로 바뀌었다며, 마지막 방송 2주 전쯤 하차가 통보되었다. 양희은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잘렸다”는 언급으로 서운함을 전했고, 박미선과 이지혜도 <해피투게더 4>(한국방송2) 녹화에서 갑작스러운 종방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국방송(KBS) 시사교양국은 “세 진행자와 하차 관련해 원활히 소통했다”고 말했지만 믿기 힘들다.
하차 과정도 문제지만, 이유가 도통 납득되지 않는다. <거리의 만찬>은 출발부터 젠더적인 문제의식을 담아냈다. 처음부터 ‘세 명의 여성 진행자’ 구성이 주목을 받았다. 2018년 7월 파일럿(맛보기) 방송에서는 박미선, 김지윤 박사, 이정미 의원이 출연했고, 11월 정규방송에서는 이정미 의원 대신 김소영 아나운서가 합류했다. 이후 양희은과 이지혜로 교체되었지만, ‘세 명의 여성 진행자’ 구성은 바뀌지 않았다. 즉 ‘여자 셋이 진행하는 시사 프로그램’이 <거리의 만찬>의 정체성인 셈이다. 이는 시사와 교양을 남성의 전유물인 양 인식해온 편견에 맞서는 여성주의적 함의를 담고 있으며, 젠더 감수성을 통해 이슈에 접근해나가겠다는 취지를 담는다.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해고, 낙태죄 폐지, ‘학교 미투’ 운동을 이끈 청소년, 성추행 위협에 노출된 여성 방문노동자, 발달장애인 엄마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등등. 그동안 일반 시사 프로그램이 등한시하였던 문제들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가 당사자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거리의 만찬> 피디들은 “기획안을 만들 당시부터 여타 다른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반작용 때문에 여성 엠시가 시사를 전하고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는 프로그램을 생각했다”고 전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개편은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상반되는 결정이다. 여성 진행자 셋을 느닷없이 자르고, 그 자리에 김용민과 신현준을 진행자로 앉혀 첫 회 촬영까지 마치고 2월16일 첫 회를 방송할 예정이었다. 시사교양국은 “현장성 강화 등 프로그램 변화가 필요해 제작진이 교체를 결정했으며, 김용민은 시사적인 배경이 강한 분이라 적임자로 판단해 섭외했다”고 밝혔다. 김용민의 과거 콘돌리자 라이스에 대한 발언이나 최음제 발언 등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이 높아진 최근까지도 버닝썬 사태를 웃음거리로 삼아 패러디한 일이 구설에 올라도, 시사교양국에서는 ‘진행자 교체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결국 김용민이 양희은 하차 과정의 석연찮음을 지적하며 자진사퇴하자, 시사교양국은 뒤늦게 후임 진행자를 찾는 등 프로그램을 정비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현장성 강화’와 진행자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물갈이하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 “스튜디오에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현장으로 직접 가고 파업하면 그 현장에서 직접 그들과 같이 식사하고 직접 현장을 보여주겠다. 물론 특별한 성별이 현장에 부합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눈에 띄는 변화가 필요했다”는 제작진의 해명은 더욱 아리송하다. 그동안 <거리의 만찬>이 현장성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설사 현장성을 높이더라도 여성이 못 할 이유가 없다. 공연한 이유를 들어 지레 여성을 배제해온 익숙한 수법이다. 여성 이슈와 관련해서는 “일부 기사에서 시즌 1에서 여성과 관련된 주제가 많다고 강조를 하지만, <거리의 만찬>에서 다룬 주제는 여성 이슈 외에도 굉장히 다양하다. 소외계층을 주로 다뤘고 시즌 2도 같은 주제를 다룰 것이다”라고 해명하였다. 전형적인 젠더 이슈 물타기로 분노를 자아낸다. 여성 이슈를 수많은 이슈들과 뒤섞어 버린 채, 마치 젠더 문제가 보이지 않는 듯 딴청을 피우는 식이다.
<해피투게더 4>에 출연한 박미선이 세 남자 진행자에게 “셋이 아직도 해요?”라고 날린 일침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해피투게더 3>에서 박미선과 신봉선이 잘리고, 남자 진행자들로 교체된 사건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셀럽파이브>(엠비시플러스) <프로듀스 101>(엠넷) <미스 트롯>(티브이조선) 등도 여성 출연자들이 힘겹게 개척하여 프로그램을 안착시키자, 제작비를 올리고 남성 출연자들로 바꾸어 시즌 2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오간다. 이제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혹자는 이를 세입자들이 애써 상권을 일군 과실을 건물주들이 가져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비유하기도 한다. 왜 여자들이 힘들게 가꾸어놓은 것을 남자들이 빼앗아가지 못해 안달하는가. 제발 상도덕을 지키기 바란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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