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울산 사건 몸통은 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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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2.14 17:54

어제 아주 의미 있는 법원 판결들이 나왔다.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과 관련되어 기소됐던 판사 3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부장관이 기소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강요죄 적용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됐다. 같은 날 대법원에서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댓글 공작을 벌인 드루킹, 김동원씨에 대해 징역 3년 형을 확정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적폐 청산의 광풍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핵심 보직을 맡았던 판사들이 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결들은 지금 정부가 밀어붙인 적폐 청산과 수사가 얼마나 정치 보복적인 것이었으며 법을 어긴 것이었는지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오늘 한 신문의 사설이 지적한 것처럼 "촛불 정부의 탄생 과정에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범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어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청와대 선거 개입’ 수사와 관련해서 "사실상 총기획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수사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는 최고위원 회의에서 작심한 듯 대통령을 겨냥했는데, "대통령의 강한 의지 없이는 절대 시행이 불가능한 선거공작"이었다면서 "검찰은 주변만 건드리지 말고 진원지를 파헤쳐야 한다. 선거공작의 몸통인 문 대통령의 혐의 역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울산 선거공작 사건의 ‘주범’으로 문 대통령을 지목한 것이다. ‘총기획자’ ‘진원지’ ‘몸통’이라는 표현을 썼다. 제1야당 대표로서 이보다 더 원색적이고 강렬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황 대표는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침묵은 묵시적인 혐의 인정이다. 문 대통령도 당당하다면 수사에 응하라"고 다그쳤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본인이 범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같다는 뜻이다.

사실 문 대통령에게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한 것은 황 대표가 처음은 아니다. 전국 377곳 대학에 6000명이 넘는 회원을 둔 ‘사회 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에서는 이번 주에 청와대의 울산 선거 공작과 관련해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교수들은 성명에서 "편의적 정의가 아니라면 이런 중대 사안에 대해 대통령은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교수들의 성명서는 이어서 "그러지 못한다면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의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피의자로서의 묵비권은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다음 행사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을 ‘울산 사건’의 ‘피의자’로 못 박은 것이다. 또 대법관, 헌법재판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대한변협 회장 등을 역임한 변호사 500여명은 울산 선거 공작에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이었느냐고 공개 질의하는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 사실이라면 탄핵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생각보다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지 못했다면서 사과했다. 또 세월호 구조를 잘못했다면서 사과했다. 또 가습기 희생자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면서 사과했다. 신군부 때인 1980년 발생한 10.27 법난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심지어 월남전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문 대통령이 했던 사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본인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에만 사과를 했다. 본인이 사과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앞선 정부를 비난하는 속뜻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월호 사과’는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었고, ‘월남전 사과’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하는 속뜻이 배어 있었다. 국민들 눈에 문 대통령의 사과는 정치적 이벤트이자 쇼로 비칠 수밖에 없었고, 아무런 감동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런 말을 했다.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 직접 브리핑하겠다." 자,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 무엇인가. 그것을 꼽으라면 우한 폐렴 사태,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 조직 8곳이 일사불란하게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울산 선거 공작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40번 가까이 등장할 정도로 문 대통령이 사건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이 ‘30년 지기의 당선이 소원’이라고 했던, ‘송철호 울산 시장 만들기’ 공작이었다. 문 대통령이 송철호씨에게 시장 출마를 요구했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일부러 딴청을 피우면서 입을 다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말 ‘피의자 묵비권’을 행사하는 중인가, 라고 따져 물어도 아무런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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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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