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이동·교역 제한 안 해 ‘중국 봐주기’·늑장 대응 비판

by

‘국제 공중보건비상사태’ 선포
중국 확진 공식 발표 후 한 달 만에
아프리카 등 취약국 지원 가능해져
중 10조 지원금 ‘눈치보나’ 지적도

http://img.khan.co.kr/news/2020/01/31/l_2020020101000032200274391.jpg
필리핀서도 ‘첫 확진’ 학생들 발열 검사 31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대학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학생들이 캠퍼스에 입장하기 위해 발열 검사를 받고 있다. 전날 필리핀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마닐라 | AFP연합뉴스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전 세계로 급속히 퍼지자 세계보건기구(WHO)도 드디어 ‘국제 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중국이 지난해 12월31일 신종 코로나 확진을 공식 발표한 후 딱 한 달 만이다.

WHO는 3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자문기구인 긴급위원회 회의를 열고 비상사태 선포를 결정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병원체의 출현을 목격했다”면서 “이 바이러스가 보건 시스템이 취약한 국가로 퍼진다면 어떤 피해를 볼지 모른다. 그런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금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상사태 선포에 따라 향후 국제사회 차원에서 공중보건 조치가 강화되고, 자금 및 의료진과 장비 등의 지원도 확대된다. 발원지인 중국과 감염 확산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도 이뤄진다. WHO는 각국에 발병과 관련한 투명한 정보 제공과 감염 환자들의 격리를 요구할 수 있다.

긴급위원회는 임시 권고안을 통해 WHO에 발병 원인 및 사람 간 전염 수준 조사, 발병 통제 지원 등을 권고했다. 또 보건 시스템이 취약한 국가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조처를 주문했다.

중국 당국에는 공중보건 정책 강화, 의료인력 보강, 정보 공유, 검역 강화 등을 권고했다. 각국 정부에는 능동감시, 조기 식별·격리·관리 등 방역 대책 마련 및 치료법 연구 협력을 주문했다. 다만 WHO는 국제적 이동·교역을 제한하지는 않았다. 긴급위원회는 이동·교역 제한이 일시적 유용성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전에 비용 편익 분석을 해야 한다고 했다.

WHO의 비상사태 선포는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야생형 소아마비, 2014년 에볼라, 2016년 지카바이러스, 2019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에볼라에 이어 6번째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았다. WHO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사태 이후인 2005년 비상사태 선포 규정을 만들었다. 이번 신종 코로나가 “한 국가의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행동이 즉시 필요한 경우”라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 BBC는 비상사태 선포로 아프리카 등 취약국가를 지원할 수 있게 돼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 생의학 지원 재단인 ‘웰컴 트러스트’의 제러미 파라 총재는 “신종 코로나 대응에 특히 저소득 국가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3번째 긴급위 회의 끝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긴 했지만, WHO의 늑장 대응은 도마에 올랐다. WHO는 첫 확진자 발표 후 20여일이 지난 22일에야 첫 긴급위를 소집했는데, 당시 중국 밖에서 사람 간 감염이 제한적이라며 비상사태를 선언할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WHO가 주춤하는 사이 신종 코로나는 급속도로 퍼졌다. 대규모 인구이동이 있는 춘제(중국의 설) 연휴 등 현지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 WHO가 판단을 잘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이번에 국제적 이동·교역을 제한하지 않은 것은, WHO에 600억위안(약 10조원)의 지원금을 약속한 중국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안팎에서 후베이(湖北)성과 우한시 등 당국의 초기 대응에 대한 질타가 높은데도,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WHO는 중국의 전염병 통제 능력을 지속해서 신뢰할 것”이라고 하는 등 칭송으로 일관했다. 중국으로서는 이동·교역을 제한하면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해 이 조치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WHO는 앞서 2014년 에볼라 비상사태 선포 때도 여행·교역 제한을 권고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