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바이러스의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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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초기 전염병의 주범으로 사향고양이가 의심받았다. 재래시장에서 바이러스 검사를 해보니 사향고양이에서 사스바이러스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역학조사는 이런 심증을 굳게 만들었다. 식당 종업원이었던 환자가 키우던 사향고양이에서 사스바이러스가 나온 것이다. 광둥성 재래시장의 사향고양이 4000여마리와 야생동물 660여마리가 도살됐다.

사스 창궐 후 새로운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사향고양이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사람과 사향고양이의 사스바이러스 비교 결과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과 동물 사이 종간 전염을 일으키려면 큰 유전자 변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스에 감염된 사향고양이가 야생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재래시장 사향고양이에서만 사스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사향고양이도 다른 동물에 의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었다. 사스의 자연숙주는 중국 남부지역에서 서식하는 관박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쥐는 많은 전염병의 진원지다. 1990년대 호주에서 경주마와 조련사를 죽인 헨드라바이러스, 말레이시아에서 100여명을 사망케 한 니파바이러스, 에볼라바이러스의 주범은 과일박쥐였다. 돼지 불임을 일으킨 매냉글바이러스, 광견병과 유사한 라싸바이러스도 박쥐가 주범이다. 이집트 무덤박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퍼트렸다. 사향고양이, 낙타, 돼지, 말은 박쥐와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중간숙주였다.

박쥐에는 137종의 바이러스가 있고 인간에게 옮길 수 있는 것만 61종에 달한다고 한다. 박쥐가 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도 살 수 있는 것은 특수한 능력 때문이다. 박쥐는 면역반응을 조절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바이러스를 갖고 있지만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체온이 높아 바이러스가 있더라도 증식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능력이 박쥐를 ‘바이러스의 저수지’로 만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바이러스도 박쥐에서 나왔다. 그러나 책임을 박쥐에 물을 수 없다. 야생에서 박쥐를 잡아오면서 시작된 재앙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저수지에 섣불리 손을 댔다가 화근을 자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