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도쿄 책갈피]여전히 위협받는 일본 여성의 인권…목소리 내는 한국 문학서 안식처 찾아

by

그들은 왜 한국 페미니즘에 열광할까?

http://img.khan.co.kr/news/2020/01/31/l_2020020101000007100273872.jpg

지난해 봄, 도쿄대학 입학식 축사가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궜다. 여성학 권위자 우에노 지즈코 명예교수가 여성 입학생들에게 “지금까지는 노력하면 된다고 살아왔겠지만, 앞으로는 노력이 대가를 가져다주지 않는 사회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어 도쿄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도쿄대 여학생 가입 불가 동아리’, 여학생 입시 점수를 깎은 의대 등을 예로 들며 일본 사회가 얼마나 여성에게 차별적인지를 다시금 인식하게 했다.

일본에서 여성의 인권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재작년 도쿄의과대학병원은 여성 수험자의 점수를 일괄적으로 감점처리했다. 현재 일본 국회에서는 부부 별성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보수파 국회의원들은 부부의 성이 다르면 가정이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직장에서 하이힐과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강요받는 일본 여성들의 탈출구는 무엇일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국 여성작가들의 소설에서 이들은 숨 쉴 틈을 찾고 있다.

2019년 7월 발간된 문예지 ‘분게이(문예)’는 ‘한국, 페미니즘, 일본’을 특집으로 꾸려 한국 현대 여성작가들 단편을 대거 실었는데, 창간 이래 86년 만에 3쇄를 발행했다. <완전판 한국·페미니즘·일본>은 분게이 특집의 증쇄판이다. 잡지에서 단행본으로 형태를 바꾸었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국작가 조남주의 ‘가출’, 가수 이랑의 ‘똥손좀비’, 윤이형의 ‘쿤의 여행’, 박민정의 ‘모르그 디오라마’ 등 4편의 한국 단편소설과 황정은, 최은영의 기고문이 실려 있다. 그외 수많은 일본 작가들의 한국 페미니즘 관련 에세이가 수록된 작품집이다.

도대체 이 작품집에 일본인들은 왜 그토록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만화가 와타나베 페코의 기고문에 그 답이 실려있다. 방탄소년단이 여성을 성적으로 보는 노래를 많이 만든 일본 작사가와 협업을 하려고 했을 때, 일본에서는 ‘그 사람에겐 우수한 업적이 있다’ ‘어쩌면 이번 곡은 성차별적이지 않은 노래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다’ 등의 의견이 쇄도했는데, 한국에서는 ‘철회하라’ ‘그 작사가가 쓴 노래를 다시 한번 읽어봐라’ 등의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소속사에도 항의를 했다며, 한국의 발빠른 기동력, 에너지, 행동력, 연대능력에 놀랐다고 적고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본질에서 눈을 떼려는 일본과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한국의 차이에 대해 쓰면서 “왜 우리들(일본)은 자신의 의사보다 분위기를 더 중요시할까? 대체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어떤 권력 앞에서도 싸워 이기겠다는 투지는 일본에선 아둔하게 평가되며, 분위기와 시류를 타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겨진다.

http://img.khan.co.kr/news/2020/01/31/l_2020020101000007100273871.jpg

현명하다는 건 무얼까? 도쿄대에 여학생 출입금지 동아리가 있다면 그 동아리를 무시하면 그만이고, 아무리 사회와 회사가 강요해도 나 혼자만 하이힐을 거부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일본 사회의 현명함이다. 그러나 그 결과 “도쿄대 여대생 가입 불가 동아리는 전통일 뿐, 여성혐오가 아니다”라고 하는 남학생들이 다수 생산되고 있다. 한국 페미니즘 문학은 아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깨어 있겠다는 이들이 수용한 마음의 안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