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그들은 ‘왕조시대의 언어’로 민주사회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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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의 사회학
최종희 지음
오월의 봄 | 416쪽 |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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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14일 김문수 당시 경기지사가 경북 구미에 있는 금오공대 특강을 하기 전 송정동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경북 지역은 왜 보수정당을 그토록 지지할까. 한때는 ‘한국의 모스크바’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진보적 분위기가 가득했다는 대구는 어쩌다가 ‘보수의 아성’이 됐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 대구경북 지역 사람들은 불쾌해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그게 왜 궁금하지?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린 원래 그랬는데….” 그러면서 또 내심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진짜 왜 그렇지? 이유가 뭐지?”

<대구경북의 사회학>은 그 대답을 찾아보려는 책이다. 저자 최종희(57)는 뒤늦게 사회학에 관심이 생겨 2012년 대학원에 진학했고, 2019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대구경북의 마음의 습속>을 썼다. 이 책은 학위논문을 보완해 단행본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타지역 사람이라면 이런 민감한 주제로 감히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최종희는 책날개에 있는 저자소개를 통해 자신이 ‘경북의 작은 집성촌’에서 태어났음을 확실히 밝히고 시작한다. 더 보태자면 최종희는 2~3년을 제외하고는 쭉 대구경북 지역에서 살아왔으며, 박사학위도 대구에 있는 계명대에서 받았다.

최종희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분야는 ‘이민다문화’였다. 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을 앞에 두고 방향을 틀었다. 최종희는 지난 29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처음에는 이게(대구경북의 마음의 습속) 주제가 된다고도 생각을 못했다”며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배우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것들이 너무나 달라 지도교수님께 힘들다고 하소연했더니 교수님이 그걸 논문으로 써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회학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에 의문을 품고, 그 이유를 파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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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희는 양적연구가 아닌 ‘질적연구’로 방향을 잡았다. 대구경북 지역에 사는 50~60대 남녀 각 5명씩을 연구참여자로 선정했다. 대구경북에서 태어나 군대, 직장 등의 사정으로 잠깐 떠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줄곧 이 지역에서 거주해온 지역민들이다. 모두 대구경북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학교에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50~60대는 “가정과 교육, 시장, 정치 등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서 활용하고 있는 사회적 규칙이 가장 잘 체화되어 거기에 따른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이들이 저자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격변기를 함께 보낸 것도 고려했다.

재산과 직업 등도 고려했다. 모두 평범한 기성세대이자 중산층이다. 최종희는 “상류층에 속하는 소수 엘리트 집단은 언론이나 자서전을 통해 정제된 이데올로기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일상적인 언어를 활용해 삶을 영위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다. 마음의 습속은 서사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이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먼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도록 하고, 가족에 대해서도 상세히 묻는다. ‘대구경북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부터 ‘역대 대통령 중에서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여러 범주의 질문이 이어지다가 ‘나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었나’까지 묻는다. 한 사람의 가치관과 정치성향 등 모든 것을 이끌어내려는 인터뷰다.

인터뷰를 마친 결과 최종희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공동체주의 언어, 왕조시대 언어, 국가주의 언어를 사용해 시민사회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보편적인 선을 추구하는 시민 영역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구경북이 아직 민주주의 사회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주장한다. 또 현재 대구경북의 마음은 시민사회와 고립된 상태이고, 이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시민으로 태어나기 위해 훈련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구경북 사람들은 아직 그 과정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겨우 10명과 인터뷰한 뒤 대구경북 사람들을 단정짓는 것이 제대로 된 방식이냐는 반론이 나올 만하다. 최종희는 “질적연구는 항상 대표성 문제에 시달리기 때문에, 책에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많이 애를 썼다”며 “내 책은 일반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이 살았던 장소와 시대의 감성을 서사하는 것에 치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질적연구를 하다보면 (각각 다른 사람에게서)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할 필요가 없게 된다”며 “질적연구의 연구참여자는 10명으로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책은 “평범함이 악이 되는 이유는 사악한 습속 때문”이라는 다소 거칠어 보이는 결론에 도달한다.

최종희는 “습속은 우리가 살다보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예전부터 했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나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습속대로 살다보면 결국 악이 된다. 습속에서 깨어나 두드려보고, 의심하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습속이 무서운 것은 (최근 박근혜를 다시 옹호하는 것처럼) ‘잘못했다’며 반성했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오는 점”이라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젊은 세대들은 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