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헌법 이념 명백히 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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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에
대법관 4명 조목조목 ‘보충의견’
“자유민주 질서 어긋나” 강력 비판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판결에서 박정화·민유숙·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보충의견으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81)의 지시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관 4명의 의견은 향후 어떤 정치적 이념과 성향을 가진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법관들은 먼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면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7조를 꺼냈다. 공무원의 행위는 국민 ‘일부’가 아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헌법 7조가 준수돼야 한다고 대법관들은 밝혔다. 국가가 문화예술을 지원하되 자율성을 침해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대법관들은 “단지 특정인이 정부와 반대의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다거나, 야당의 정치지도자를 지지했다는 것이 지원 배제를 정당화할 합리적 사유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며 “헌법의 근본 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음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대법관들은 블랙리스트가 문화예술인의 표현의 자유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단순히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정부에 반대하면 지원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에 억지로 찬성하거나 적어도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대법관들은 “예술가로 하여금 표현의 자유와 정부의 지원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문화예술인들의 예술적 상상력과 이를 표현하려는 의지를 위축 또는 왜곡시킬 수 있다”고 했다.

국무회의 논의 등을 거치지 않아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짚었다. 대법관들은 “일부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 명단 작성 및 지원 배제가 행정부 차원에서 중요한 정책사항에 해당한다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했어야 한다”며 “대통령비서실 소속 몇몇 공무원이 밀실에서 비공식적으로 논의한 것에 불과한 사항은 행정부의 ‘정책’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