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급부상 차기 주자’ 윤석열, 이제 그의 운명은?

by

입력 2020.01.31 18:04

여론조사는 어떻게 하는가. 어떤 여론조사가 좋은 여론조사인가. 요즘 여론조사는 대체로 믿을 만한가. 조사비용, 즉 돈 내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는 여론조사, 정권에 아부하는 여론조사는 없는가. 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조작·왜곡하는 사례는 없는가.
여론조사 결과와 선거 결과는 비슷한가, 아니면 전혀 다를 것인가. 도대체 우리나라 여론조사 기관은 믿을 만한가. 우리는 여론조사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 현재로선 시원스러운 답을 얻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들을 전제로 하고, 그런 한계 속에서 최근에 나온 여론조사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세계일보가 창간 31주년을 맞아서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서 설날 다음날부터 사흘 동안 남녀 1007명에게 물었다. 결과가 오늘 나왔다. 독자 여러분이 가장 궁금해 하실 요소를 따로 뽑아서 들려 드린다. 첫째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물었다. 그랬더니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8%를 얻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제친 것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주자 2위로 급부상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온갖 압력과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밀고 나가는 윤석열 총장에게 국민적 성원과 지지가 엄청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처럼 ‘차기 대통령 적합도’란 숫자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이 신문은 "보수진영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부상하면서 황교안 대표의 독주 체제가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황 대표에게 나쁜 일만도 아니다. 윤 총장이 10.8%, 황 대표가 10.1%다. 사실상 공동 2위다. 지금 두 사람의 경쟁과 콜라보레이션을 얘기할 단계는 전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에서 정치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윤 총장이 보수 진영일지, 좌파 진영으로 갈지 속단해서도 안 된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총장에 임명한 사람이다. 다만 윤 총장은 본인 자신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주의자란 점을 올해 신년사에서도 수없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윤 총장은 지금 차고 오르는 기세다. 그런데 혹시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생겨서 윤 총장이 올 4월 총선부터 국민적 여망을 담아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 우리 판단으로는 그런 기대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섣부른 희망이다. 사실 ‘대권 주자’라는 말도 너무 앞선 말이다. 윤 총장은 총장 임기가 1년 6개월이나 남았다. ‘청와대의 울산선거 개입 사건’은 관련자 13명의 전격 기소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제 윤석열 검찰은 공소 유지를 위해 모든 힘을 쏟을 것이다. 윤 총장은 추미애 법무장관이 전국 곳곳으로 흩어버린 기존 수사팀을 다시 불러 모아 재판과 공소 유지에 투입할 것이다. 이것은 청와대도 추 장관도 막을 수 없다. 검찰총장의 고유 권한이다.
윤석열 총장이 현직 검찰총장 신분으로 차기 대통령 적합도 2위로 보도됐다는 것은, 검찰 내부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던 일선 검사들도 윤 총장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원칙과 의지가 얼마나 국민적 신망을 얻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중심으로 단합하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 ‘차기 대권 주자’ 윤석열 검찰총장과 ‘청와대에 복종할 뿐인’ 추미애 법무장관이 대비된다면 말의 무게와 운신의 폭과 검찰 내외부에 대한 영향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를 좀 자세히 보면, 윤석열 총장은 무당층과 새로운보수당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특히 무당층에서는 15.8%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들 중에는 주말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정치적 의사 표시와 결집에 온 힘을 기울이시는 분도 많지만, 여기에도 저기에도 마음을 두지 못해, 마치 최백호 노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처럼, 무당층, 부동층으로 남아 계시는 분들도 많다. 특히 그분들로부터 윤석열 총장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론조사는 이런 질문도 했다. ‘안철수 전 대표가 이번 총선에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가.’ 응답자 67.5%가 ‘영향력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도가 점점 옅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한 셈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탈당을 하든 신당을 만들든, 많은 국민은 그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 된다. 안철수 전 대표가 전국적 정치 무대에 계속 남아 있으려면 자유한국당과 통합하는 길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이번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40대, 한국당은 60세 이상에게 강세를 보였고, 호남은 민주당, 영남은 한국당 구도도 여전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조사결과가 있다. 이번 총선은 우리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진다. 따라서 ‘비례대표 투표 정당’을 묻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 조사 결과 보수 통합이 무산됐을 경우엔 미래한국당이 얻는 지지가 15.0%, 새보수당이 3.1%다. 둘을 합해도 18.1% 밖에 안 된다. 그러나 보수 통합에 성공해서 통합 정당을 만들었을 경우엔 그 지지율이 24.1%로 민주당의 25.8%와 비슷하게 된다. 보수 진영에 대한 국민의 명령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다시 정리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처음 이름을 알렸고, 2위가 됐다. 윤석열 검찰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수치로 드러났다. ‘울산선거’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 유지가 힘을 얻을 것이다. 우선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에서 윤석열 총장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https://image.chosun.com/sitedata/image/202001/31/2020013102851_0.jpg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좋아요 0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제휴안내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