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과연 ‘레드라인’을 넘을까
북한이 지난 7일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로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엔진 시험을 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발표가 나온 뒤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만약 적대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매우 똑똑하다"고 말했는데, 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선'을 넘지 않기를 기대하는 취지로 보입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선', 즉 레드라인(Red line)은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제시한 '연말'까지 미국이 화답하지 않으면 내년에 이 레드라인을 넘을까요?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봤습니다.
"북한, 명분 쌓기 후 ICBM 발사할 가능성"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오늘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북한이 크리스마스 때 사거리가 더 나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든지 또는 ICBM 여러 대를 한꺼번에 고출력 엔진, 고체 연료를 써서 발사하는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북한은 이제 핵 강국, ICBM 강국이 됐다고 하면서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 등 4개국이 동북아 지역 핵 군축 협상을 하자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남성욱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남 교수는 1월 말에 있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내용을 살펴보고, 여기에도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메시지나 협상 의지가 없다면 북한이 ICBM을 발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청사진을 담고 있습니다. 남 교수는 만약 연두교서에 비핵화 협상에 대한 그림이 담기지 않는다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에 미국의 잘못으로 자신들은 정당한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미국 학계에서도 ICBM 발사 가능성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CNI)의 한국 담당 국장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은 미국, 한국과의 관계 개선 분위기가 수명을 다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애덤 마운트 미국과학자연맹(FAS) 연구원도 월스트리트저널에 "단거리 미사일 시험으로 1년을 보낸 뒤, 북한 정권은 이제 완전한 미사일 시험 프로그램을 재개하기 직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고 ICBM을 발사했을 때의 UN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 가능성 등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군 당국 역시 북한의 ICBM 발사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국 때문에 레드라인은 넘지 않을 것…판 깨는 건 큰 부담"
한편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북한이 레드라인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한번 레드라인을 넘으면 협상 판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서, 북한으로선 너무 큰 부담이라는 겁니다.
특히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으면 중국과 러시아가 중재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이 이를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후원에 기초해서 당분간 선을 넘지 않은 채 현상 유지를 하면서 미국 대통령 선거의 불확실성을 관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역시 북한이 레드라인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조성렬 위원은 "김정은 위원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이 자신들의 핵 문제를 해결할 드문 기회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쉽게 기회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장기적으로 끝까지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까진 말 못하겠지만, 현재 국면에서는 최대한 미국을 압박하면서 벼랑 끝으로 가되, 레드라인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 겁니다. 또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미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김정은 위원장과는 협상하려 하지 않을 거라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북한이 레드라인 '턱밑'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지만,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예상한 건 있습니다. 북한이 레드라인의 턱밑까지 도발을 이어갈 거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레드라인 턱밑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첫 번째는 '핵시설 가동'입니다. 김동엽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를 '핵 무력 질량적 강화'라고 표현했습니다. 김동엽 교수는 북미 간에 핵 동결을 합의한 적은 없다면서 영변에서 핵물질을 증가시키는 재처리, 농축 등 그 어떤 핵 활동 중단도 합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희옥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핵시설 가동은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면서 레드라인은 넘지 않는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시설을 가동하고 핵 동결 문제를 이슈로 부각해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두 번째는 인공위성 발사입니다. 이희옥 교수는 "인공위성은 ICBM보다는 훨씬 더 상황 관리가 쉽고, 모호성을 띠는 정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성렬 위원도 인공위성 발사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조 위원은 "북한은 우주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2022년까지 독자적인 GPS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밖에 북한의 '핵실험·ICBM 시험발사 중지' 철회도 언급됐습니다. 북한은 이달 하순에 변화된 대내외적 정세의 요구에 맞게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결정하기 위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소집을 결정했습니다.
북한은 앞서 지난해 4월 20일 있었던 3차 전원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5차 전원회의에서 이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성렬 위원은 "북한이 추가로 레드라인 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 열어 두고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