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의 내 인생의 책]②공생자 행성 - 린 마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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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없이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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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신에 찬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당연히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을 믿는다. 진화론이라고 하면 다들 찰스 다윈을 떠올리겠지만, 반드시 그에게 의지해야만 지구 생명체들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일 수 있는 린 마굴리스는 2011년 타계한 미국의 진화생물학자로, 다윈주의적 적자생존이 아닌 공생발생(symbiogenesis)을 통한 진화, 즉 공생진화론의 주창자다.

마굴리스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아는가는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거대한 존재의 사슬’이라는 진화의 관점, 그 사슬의 끝과 세계의 중심에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가 있다는 관점이 우리로 하여금 다양한 생명체들 간의 공생을 볼 수 없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원생생물인 믹소트리카 파라독사는 적어도 다섯 종류의 생물이 공생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새로운 개체다. 인간 역시 수분을 제외한 몸무게의 10% 이상은 살아 있는 세균이 차지하고 있으며, 세균과의 공생관계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녀가 볼 때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다른 생물과 물질, 에너지, 정보를 교환하는 공동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해봐야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종일 뿐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서로 의존하고 있다. “ ‘남’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상호의존과 공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삶의 조건인 것이다. 이를 망각하면 인간 사회도 지구(공생자 행성)도 파괴되며, 미래의 존립을 기약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을 것을 파괴해버렸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