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과 패스트트랙] “상대 당에 왜 꽃길 깔아주냐” 당내 거센 반발에 꺾인 심재철 첫 협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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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철회’에 불만 쏟아져…예산 합의 조건 걸게 돼

자유한국당이 9일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의 첫 협상안인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철회’를 보류시켰다.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왜 먼저 철회를 공식화해주느냐” “상대 당에 꽃길만 깔아주는 합의안 아니냐”고 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당은 결국 “예산안 합의가 이뤄지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겠다”며 여야 합의안을 보류했다. 필리버스터 철회를 먼저 내걸면 원하는 방식으로 예산안 협상을 하지 못할 것이란 불안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심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직후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는 여당의 약속을 받고, 대신 필리버스터 철회와 민생법안 처리를 합의했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심 원내대표의 첫 협상 결과물을 거부했다.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철회’라는 표현부터 도마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합의 후 5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강효상 의원은 “많은 의원들이 발언했다. 철회라는 표현에 의원들이 정서적인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지금 합의안대로라면 상대한테만 꽃길을 깔아준 것 아니냐”며 “굳이 철회부터 해줄 것이 뭐가 있느냐”고 했다.

심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후 “예산안이 합의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합의문을) 작성했다”면서 “예산안이 합의되면 다른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안 선 처리’를 필리버스터 철회 조건으로 다시 내건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은 예산안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민주당 주도의 여야 ‘4+1 협의체 예산안’이 통과될 상황을 염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선 합의안대로라면 예산안이 민주당 안대로 처리되더라도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를 철회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의원은 “그간 강경 대응을 하면서 버텨왔는데, 아무 소득 없이 필리버스터를 내주는 꼴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당이 예산안 협상을 거부하거나 마냥 강경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예산안 처리는 한국당도 시급한 과제인 데다, 국회법상 예산안 합의가 진행되지 않으면 정부안이 통과되기 때문이다. 민생법안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도 한국당으로선 부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