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남녀칠세부동석’ 없애고, 반정부 시위 선봉에도 여성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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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 부는 중동…달라지는 여성들
여성 카레이서 F4 우승도
“성 역할의 고정관념 변화” 알 자지라, 기획기사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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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출입’ 폐지 사우디아라비아 지다에서 8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레스토랑의 여성전용 서비스 구역을 떠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이날부터 여성들은 더 이상 식당, 카페 등에서 남성들과 별도의 출입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지다 | AP연합뉴스

‘꽁꽁 동여맨 히잡과 니캅’ 등으로 상징되던 ‘여성 인권 억압’ 이미지의 중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왕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연이은 개혁조치로 여성의 활동 반경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가 하면, 중동을 휩쓸고 있는 반정부 시위대의 맨 앞줄에도 어김없이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8일(현지시간) 식당과 카페 등지에서 성별에 따라 남녀 고객의 출입구와 좌석을 별도로 마련토록 강제한 규정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국영 SPA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행정자치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가족이 아닌 남녀가 공공장소에 함께 머무를 수 없도록 한 시행령이 식당 등에서는 더 이상 의무규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우디에서는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물론 스타벅스 등 서구의 체인점 카페에서까지 남녀용 출입구가 따로 존재하고 내부 좌석도 남성만을 위한 ‘싱글석’과 여성들 혹은 가족이 함께 온 여성을 위한 ‘가족석’으로 구분돼 있다. 당국이 이날 발표한 조치는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 해석에 따른 기존의 ‘남녀유별’ 규범을 앞으로는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번 조치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탈석유 시대를 대비해 추진 중인 사회개혁정책 ‘비전 2030’의 일환이다.

이슬람 전제왕국인 사우디는 고질적인 남녀 차별과 여성 억압적 제도 탓에 해외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해 왔는데, 이를 과감히 탈피하겠다는 상징적인 조치를 왕실이 하나둘씩 내놓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여성 선수를 출전시킨 것이나 지난해 여성 운전면허 취득 허용 등이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극보수’ 사우디에 앞서 이웃나라들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최근 두 달여간 격렬한 시위로 아딜 압둘마흐디 총리가 물러난 이라크에서는 여성들이 시위대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성 역할에 대한 (무슬림 사회의)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다”며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을 주목하는 기획기사를 지난 5일 내보냈다.

알자지라가 만난 바그다드 거주 여성 누르 알아라지(30)는 매일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시위대의 거점 타흐리르 광장을 출퇴근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는 매일 시위대가 상주하는 광장 내 텐트에 빵과 치즈 등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병참 보급대원’ 역할은 물론 위급한 상황에선 부상자들의 응급처치에도 나선다. ‘최일선’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던 간호학 전공의 바그다드대 졸업반 파티마(22)도 “다친 사람들을 돕는 건 의료인의 당연한 의무”라며 “단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정부 시위 확산으로 지난 10월 말 사드 하리리 총리가 사퇴한 레바논에서도 시위대 앞줄에 항상 여성들이 서 있다.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10월 베이루트에서는 공포탄을 쏘아대며 위협하는 교육부 장관 경호요원의 사타구니를 힘차게 걷어찬 한 시위 여성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레바논의 라라 크로프트(여전사)’로 불리며 세계 여성들의 박수를 받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는 지난달 30일 여성 카레이서 암나 알쿠바이시(19)가 아부다비에서 열린 포뮬러4(F4)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