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서울시 ‘혐오표현 금지’ 학생인권조례 ‘합헌’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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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차별·혐오표현 금지 규정…표현의 자유 제한 아니다”
“혐오표현, 학생 정신·신체적 능력 훼손”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
“인권의식 함양 위해 규제 필요”…지자체 조례 논의 탄력 예고

‘혐오표현’을 금지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 헌재는 혐오표현은 소수자 집단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고, 민주주의 장에서 허용되는 한계를 넘기 때문에 금지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혐오표현 규제와 관련한 헌재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헌법 위반이라며 일부 교사·학생·학부모가 낸 헌법소원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5조 3항은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과 교직원, 그리고 학생은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청구인들은 이 조항이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심리 결과 이 조항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과잉금지 원칙은 시민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적합하며, 침해가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다른 법익과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학교 구성원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학생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하며 인권의식을 함양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헌재는 혐오표현이 단순히 개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소수자 집단에 대한 편견을 사회 전체에 전파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헌재는 “(혐오표현은) 발화 즉시 표현의 상대방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이를 통해 적대감을 유발시키고 고취시킴으로써 특정 집단의 가치를 부정한다”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남기게 되므로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성 보장 측면에서 긴요하다”고 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학교’에서의 혐오표현 금지라는 점도 감안했다. 헌재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차별·혐오표현은 교육의 기회를 통해 신장시킬 수 있는 학생의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훼손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며 “판단능력이 미성숙한 학생들의 인격이나 가치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학내에서 이러한 행위를 규제할 필요가 크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을 위해 최대한 보장해야 하지만, 혐오표현은 그러한 영역에 들지 않는다는 게 헌재 판단이다. 헌재는 혐오표현에 대해 “민주주의의 장에서 허용되는 한계를 넘는 것으로 민주주의 의사 형성의 보호를 위해서도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헌재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혐오표현 규제가 가능하다고 봤다. 그동안 지자체들이 혐오표현 규제 조례를 못 만들게 하던 장애물을 없애준 것이다. 헌재 결정으로 지자체의 혐오표현 규제 조례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

앞서 경기도의회 의원들이 전국 최초로 혐오표현을 대처하는 조례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은 지자체 조례가 아니라 상위법령에서 정해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