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 '순례의 해' 한국 편, 무엇을 남겼나···"엄청난 사람들·도시·밤"
by 뉴시스입력 2019.12.09 22:31
"엄청난 사람들, 엄청난 도시, 엄청난 밤(Great crowd, great city, great night)···."
아일랜드 출신 세계적 록밴드 'U2'가 9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남긴 글귀다. U2는 결성 43년 만인 8일 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연 단 한 차례의 내한공연으로 현상을 만들었다.
U2의 월드 투어는 단순한 일련의 콘서트가 아니다. 일종의 순례다. 거룩한 순례자의 마음으로 공연하는 나라마다 맞는 메시지를 전한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 한반도의 한국에서 열린 이번 공연에서는 평화·통일, 여성·평등의 메시지를 던졌다. 한국 기획사에 의존하기보다 사전 조사를 통해 직접 메시지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통일
U2는 전날 아일랜드 판 광주학살로 통하는 '피의 일요일'을 소재로 한 곡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로 무대를 시작했다. 민족 간 피로 얼룩진 사건인 만큼 이번에 한국에서 이 곡은 6·25 동란에 초점이 맞춰졌다.
9일 청와대에서 U2의 보컬 보노를 접견한 문재인 대통령은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에 대해 "아일랜드 상황을 노래했던 것이었지만 우리 한국 전쟁이 발발한 날도 일요일이었다"며 "독일의 통일 이후 우리 한국 국민들도 남북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고 말했다.
U2는 첫 내한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원(ONE)'을 불렀다. 이 곡을 부르기 전 예상대로 보노는 평화의 메시지를 관객 2만8000명에게 전했다. 그는 "남한, 북한의 평화를 위해 모두 기도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는 '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북측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당신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가장 아름다운 밴드'라는 수식을 듣는 U2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명될 정도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무장지대(DMZ) 공연이 언급될 때마다 U2는 섭외 1순위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번에 DMZ에는 방문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U2의 DMZ 공연을 위해 기획자들이 물밑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내전을 겪은 아일랜드 출신인 U2의 대표곡 '원'은 베를린 장벽 붕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으로 독일이 통일한 해인 1990년 베를린 한자 스튜디오(Hansa Studios)에서 녹음됐다. 지난달 19일 문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에서 '원'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보노는 "문 대통령님께서 평화 프로세스에 있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신 것에 대해서, 많은 리더십을 보여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이런 평화가 단지 몽상이 아닌 정말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끝까지 굳은 결의를 갖고 임하시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에 대해서도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 특히 저는 아일랜드 출신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평등
U2는 콘서트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바꿔나간 여성들도 기억했다. '울트라 바이올렛(Ultra violet)'을 부를 때 영상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룹 'f(x)' 출신 설리 등이 등장했다. 설리의 얼굴이 보이자 몇몇 관객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히스토리(history)'라는 글귀가 '허스토리(Herstory)'로 바뀐 뒤 김 여사와 설리 외에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해녀, 신여성으로 통한 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의 민간 여성 비행사 박경원,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변호사,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의 물꼬를 튼 서지현 검사, 국내 최연소 축구 국제심판 출신 홍은아 이화여대 교수,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 등의 얼굴도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생각의 씨앗을 키운 여성들로 명명됐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스크린에 한글로 등장하기도 했다.
'라이트 마이 웨이(Light My Way)'라는 부제가 달린 '울트라 바이올렛'은 "눈에서 눈물을 닦고 네가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잖아"라고 노래하는 곡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이날 공연장을 찾았다. U2의 보컬 보노는 공연 도중 "퍼스트 레이디 김정숙 여사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김 여사는 공연 관람에 앞서 보노와도 사전 환담을 가졌다.
◇무대 기술 응집 통한 완벽한 공연
U2가 위대한 이유는 정치적, 사회적인 메시지와 함께 공연의 퀄리티 역시 세계 최고로 선사한다는 데 있다. '조슈아 트리 투어 2017'의 하나이자, 연장 공연인 이번 투어는 '스타디움 록 공연의 최고 경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라이브' 등의 극찬을 받았다.
U2가 1987년 발표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조슈아 트리' 발매 30주년을 기념한 이 투어는 6개월간 51회 공연을 통해 270만명 이상을 끌어모았다. 그 만큼 블록버스터 급 규모를 자랑했다. 가로 61m, 세로 14m의 초대형 스크린은 8K 해상도 LED로 선명도가 일품이었다.
사운드도 명징했다. 고척스카이돔은 야구장이 본 용도라 사운드 밸런스를 잡기 힘든데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의 사운드가 선명하게 들렸다.
시인 이시영의 '지리산', 미국 시인 겸 소설가 제임스 디키의 '더 스트렝스 오브 필드(The Strength of Fields)' 등이 본 공연 전에 대형 스크린에 흘러나오는 등 기술과 인문학의 조합이 완벽했다.
U2는 이번 내한공연을 위해 화물 전세기 3대 분량, 50ft 카고 트럭 16대 분량의 글로벌 투어링 장비를 그대로 공수했다. 공연 무대 설치와 운영을 위해 150명 규모의 글로벌 투어 팀이 함께 했다.
내한공연 중 역대 최대 규모다. U2가 내한공연하는 나라에는 콘서트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U2는 미국 팝스타 마돈나, 영국 로큰롤 밴드 '롤링스톤스'와 함께 내한공연을 오지 않은 3대장이었는데 팝 팬들은 일부 한을 풀게 됐다.
보노의 보컬이 여전히 청명함을 자랑한 것을 비롯 무엇보다 멤버들은 예순살에 가까운 나이에도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이날 작곡가 김형석 등이 공연장을 찾았는데 한국 뮤지션들에게도 귀감이 됐다.
콘서트 시장의 주요 관객층인 20대의 관심도는 비교적 덜했지만, 중장년층의 시장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U2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다시 한국에 오겠다고 입 모아 약속했다.
좋아요 0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