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말ㅆ·미]독장수구구는 독만 깨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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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장수가 지게에 독을 산더미처럼 짊어지고 팔러 나섭니다. 그러다 어느 곳에서 무거운 지게 내려놓고 지겟다리로 받친 뒤 잠깐 쉰다는 게 깜박 잠이 듭니다. 꿈에서 그는 지고 나간 독마다 모두 팔아 빈 지게와 두둑한 주머니로 돌아옵니다. 그 돈으로 가축을 사서 기르고 또 내다 팔아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렇게 집도 마련하고 꿈에 그리던 장가도 갑니다. 떨리는 첫날밤 새신부의 옷고름을 푸는 장면에서 독장수는 너무 좋아서 잠결에 활개를 칩니다. 그러다 지겟다리를 탁 쳤고 지게가 엎어지면서 장사 밑천이 와장창 깨집니다. 이것이 인터넷과 어린이 속담책에 나오는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트린다’의 엉터리 유래입니다. 근거 없이 지어낸 이야기라서 ‘구구’는 설명치 못하거든요.

옛날에는 구구단이 없어 5단 이하는 암산으로, 6단 이상은 주먹구구로 셈했습니다. 7×8이면 양손에 각각 7과 8을 꼽고, 편 것끼리는 더하고 꼽은 것끼리는 곱합니다. 그러면 2+3=5, 3×2=6 해서 56이 나옵니다. 이것이 ‘주먹구구식’으로 알려져 있는 그 구구입니다(상인들은 보통 3차방정식까지 가능하다는 ‘산(算)가지’로 셈했습니다). 손가락셈에만 정신 팔려 걷다보면 길바닥 못 보고 돌부리에 걸려 어이쿠! 자빠지게 되지요. 게다가 독은 주먹구구셈으로는 머리 터질 많은 이윤이 남습니다. 결국 막연한 미래를 미리 셈하다 제 발치도 못 봐 큰 낭패만 본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현실성 없이 허황된 계산을 하고 삽니다. 그런 심리에는 어쩌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대책 없는 장밋빛 미래라는 현실회피가 있을지 모릅니다. 미래가 코앞에 있다 믿으면 들떠서 코앞밖에 안 보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면 걷는 발길을 봅니다. 한 치 앞도 모를 세상, 먼 미래일수록 변수는 더욱 커집니다. 셈은 걸은 뒤에 해야 비로소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