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트렌드페어 참가하는 김지나 디자이너 “전통 직조, 오트쿠튀르 통해 되살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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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김지나씨는 패션업계에서의 오랜 경험과 네트워크를 살려 전통 직조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사업화하는 데 가교역할을 맡을 생각이다. 그는 “전통 직조 안의 무형의 가치를 제품으로 현실화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권도현 기자

“여기 삼베 드레스에 가죽 재킷 툭 걸치면 정말 멋질 것 같지 않나요? 내로라하는 패션 관계자들이 이 의상을 시상식에서 어떤 연예인이 입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이 시대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기뻐요. 30㎝ 폭의 작은 전통 직조 원단들을 잇대 만든 의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오랜 시간을 담아 전해져온 우리의 DNA 속에 우리 것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가 아닐까요?”

황금명주 상의·삼베 드레스…
신설 ‘전통 직조’ 부문 총감독

지난 5일 서울 상수역 인근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지나 디자이너(47)의 표정에는 기대감과 사명감이 어려 있었다. 그가 내보인 것은 상고시대 우리 고유의 복식을 상징하는 앞여밈을 강조한 황금명주 상의, 조선시대 상류층 여성들의 속옷인 무지기 치마를 재해석해 삼베가 3단 레이스처럼 너풀거리는 드레스, 저고리의 고름장식을 차용해 삼베·무명으로 만든 핸드백 등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직물짜기 1세대 장인들이 손수 짠 무명·삼베·모시·명주 등 4가지 전통 직조가 김씨의 디자인과 바느질을 거쳐 고급 의상과 공예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오는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하는 ‘2019 공예트렌드페어’ 전통 직조 부문 총감독인 그는 전시기간 동안 이들 작품을 포함해 총 8점을 선보인다. 올해로 14회째인 공예트렌드페어에 전통 직조 부문이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잘나가던 현대의상 디자이너
전통서 미적인 정체성을 찾아

김씨는 1997~2015년 국내 상류층과 문화계를 주름잡던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 디자이너다. 톱스타 연예인 중 그의 옷을 입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서울 청담동에 이어 남산에서 ‘김지나레아’를 운영했다. 잘나가던 현대의상 디자이너가 돌연 아틀리에까지 접고 우리네 전통 직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름다움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론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우리의 현대 의상이 결국 서양 미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했다”며 “우리의 아름다움, 미적인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전통 직조를 찾아나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통 직조는 한국 전통의 ‘의(衣)’를 상징해요. 과거 베틀질을 했던 여성의 노동, 옷 문화, 가족 간의 이야기까지 수천년의 역사가 모두 녹아 있죠. 기계로 짠 직물과는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요. 그런 만큼 잘 계승하고 대중적 사랑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죠.”

그러나 장인이 손수 짠 전통 직조로 작품활동을 하겠다는 희망은 이내 좌절로 바뀌었다. 그는 “국가무형문화재 직물짜기 1세대 장인들이 빚은 전통 직조를 찾아 지난해 7월부터 나주, 전주, 경주, 성주, 곡성 등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지만 전통 직조가 제대로 이어지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생계 유지가 되지 않는 탓에 가업으로 잇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명은 목화, 명주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고, 삼베와 모시는 1년간 삼과 모시풀을 기른 후 그 껍질을 벗겨내 실을 꼬아낸다. 그러고 나서도 30㎝ 폭의 한 필짜리 옷감을 만들기까지 4000여번의 베틀질이 필요하다. 워낙 노동이 고되고 시간이 오래 소요돼 고가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 복식문화가 단절되고 ‘옛것’이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지면서 전통 직조는 설자리를 잃었다. 그 결과 명맥도 끊기고 있다. 노진남(무명), 조옥이(명주), 김점순(삼베) 장인은 이미 모두 고인이 되었다. 김씨는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긴 삼베를 따님으로부터 받아오는 등 어렵게 장인들의 전통 직조를 구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전통 직조의 특징은 섬세함에 있어요, 그래서 그 가치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염색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부자재 등을 전혀 섞지 않았죠. 바느질도 한 땀 한 땀 모두 수작업으로 했고, 패턴도 우리 고유의 것을 사용해 현대 의상으로 만들었어요.”

김씨는 “전통 직조를 살리는 핵심은 결국 베틀질만 해서도 먹고살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오트쿠튀르 시장에서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생계 유지 쉽지 않은 일인 탓에
1세대 장인들의 명맥 끊겼지만
가업으로 이어질 시스템 만들 것

“패션 선진국에선 자기 나라만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예술로서의 의상, 오트쿠튀르 복식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한국의 오트쿠튀르를 보여달라고 하면 조선시대 복식을 내놓거나 다른 나라의 원단으로 만든 옷을 보여주죠. 원단에는 그 나라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만큼 우리 원단으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해요.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짠 전통 직조가 자랑스러운 가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디자인부터 홍보 마케팅까지 시스템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