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압송·명성황후 국장…사진으로 만난 ‘격동의 조선’
by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그리피스 컬렉션의…’ 출간
19세기 미국에 ‘한국 전문가’가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화학·물리학 교사를 지냈고 한국에 머문 것은 몇주에 불과했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잘 알았다. 한국의 선교사, 교육자, 정부 관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고 이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책·자료·문서 등을 조달받았다. 그는 <은자의 나라 한국>(1882)의 저자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1843~1928)다.
미 대학 보관 ‘그리피스 컬렉션’ 중
1876년 전후∼1920년대 사진 찾아
6가지 주제로 나눠 530여장 수록
그리피스 연구자들의 논문 7편도
그리피스는 한국 외에도 다방면에 걸쳐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한 그리피스 연구자는 그에 대해 “노끈 한 줄도 버리지 않고 모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리피스의 자료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모교인 미국 뉴저지 럿거스대학에 기증됐다. 원고만 250상자였고, 수천장의 사진·지도·문서·희귀서 등이 포함됐다. 그의 아내는 자료 운반을 위해 화물기차의 반 칸을 빌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럿거스대학 도서관의 ‘그리피스 컬렉션’이다. 한국 관련 자료들은 이 그리피스 컬렉션 속에 흩어져 보관됐다.
그리피스 컬렉션은 1999년에야 한국에 알려졌다. 럿거스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유영미 교수가 우연히 그 존재를 알게 됐다. 유 교수는 이를 연구자들에게 적극 소개했고, 한국 학자들도 연구를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순천향대 건축학과 양상현 교수(1964~2015)였다. 양 교수는 2008년 럿거스 대학에 방문교수로 머물렀다. 그리피스 컬렉션에 있는 한국 사진 500여장을 모두 카메라로 찍었다. 앞면의 사진뿐만 아니라 뒷면에 적힌 그리피스의 메모까지 모두 기록했다. 2009년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이 사진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사진 뒷면의 영어 손글씨를 네이티브 영어강사와 함께 읽었고, 대학원생들 도움을 받아 사진을 주제별로 나눴다. 그중 일부 주제와 사진은 2014~2015년 학술지와 학회,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됐다. 이제 남은 것은 각각의 사진에 설명을 달고 이야기를 입혀 완전한 사진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양 교수는 2015년 맞이한 연구년을 그리피스 사진집 편집에 쏟았다. 그러나 마무리만 남았던 사진집 작업은 그해 8월 양 교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무기한 중단됐다.
자료 발굴 주도했던 양상현 교수
타계하자 부인이 이어받아 빛 봐
양 교수가 그토록 내고 싶었던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 사진>(눈빛)이 최근 출간됐다. 럿거스 대학 시절부터 작업을 도왔던 양 교수의 아내 손현순 차의과대학 교수가 마무리를 맡았다. 유영미 교수도 한국으로 와 힘을 보탰다. 손 교수는 지난 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남편이 갑자기 떠난 뒤 한동안은 사진을 볼 수조차 없었다”며 “이제야 오랜 숙제를 끝낸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 사진>은 그리피스 컬렉션 중 1876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1920년대까지의 한국 사진과 관련 논문을 엮었다. 표지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압송되는 사진을 내세웠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는 ‘그리피스 컬렉션 사진자료’로 한국 관련 사진을 6가지 주제로 수록했다.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제국주의 침략과 민족운동, 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삶, 도시와 건축, 근대 교육과 기독교 등 여러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 530여장이 담겼다. 2부에는 양상현·유영미 교수를 비롯한 그리피스 연구자들의 논문 7편을 실었다.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 사진이 가진 학술적 가치와 그에 대한 기독교사적 고찰, <은둔의 나라 한국>의 텍스트 형성과정 등 다양한 연구 내용을 볼 수 있다. 부록으로 실린 ‘그리피스 컬렉션 사진자료 총괄목록’에서는 사진번호, 제목, 그리피스의 메모와 해석, 참고사항 등을 자세하게 정리했다.
유영미 교수는 책 서문에서 “지난 10여년간 그리피스 컬렉션의 정리되지 않은 방대한 자료들은 연구자들에게 마치 광산에서 숨겨진 원석을 발굴하는 것처럼 열정과 동기를 부여해왔다”며 “가공되지 않은 1차 자료인 그리피스 컬렉션을 통하여 학문의 재미는 교과서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성’에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손현순 교수는 “양상현 교수가 부록에 남긴 글들은 미완의 상태 그대로 출간을 했다”며 “근현대를 공부하는 후학들이 이를 보완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