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안과 밖]‘무위’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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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자(老子)의 <도덕경> 한 부분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문득 ‘아하!’ 하는 지점이 있어서였다. 정치의 등급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가장 훌륭한 군왕은 백성들이 그의 존재를 느끼지 않는 것이고, 다음은 덕(德)으로 백성을 감화시켜 명예를 얻는 것이다. 세 번째는 힘으로 다스려 두렵게 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권모술수로 백성을 우롱하고 속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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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몸담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조직에서 유사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 개의 조직 모두 리더가 있지만 간부 회의를 할 때면 두 곳 다 누가 리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참여자 전부가 리더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수평적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던 적이 있었다.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형식적으로나마 해보려 발언 기회를 돌아가며 갖게 하기도 했는데 생각처럼 화기애애하며 생산적인 조직이 되지는 않았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두 커뮤니티의 특징은 첫 번째로 구성원 모두가 그 조직을 함께하는 것을 뿌듯해하고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실수해도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신뢰와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늘 있어 진지함과 웃음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구성원 모두의 장점이 드러나며 빛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어떤 의견을 내놓으면 긍정적으로 수용해주고 함께 다듬어 더 훌륭한 프로젝트로 실현되는 것을 볼 때 어찌 신나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니 고민이 있으면 혼자 머리 싸매기보다 공동의 지혜를 얻기 위해 기꺼이 망설이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각자 할 일은 나눠져 있으나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하!’ 하는 지점은 ‘무위의 정치란 말없는 교화로 백성들이 각자 성품대로 살아가게 한다’고 하는 것인데, 이 무위의 정치란 것이 아마도 다른 측면에서는 구성원 모두 스스로 자신 안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함께할 때 경험하는 것 아닐까? 바깥세상은 내 안의 상태가 투영된 것이라고 하는데 결국 무위의 리더십이 펼쳐지는 것은 구성원들 수준이 리더와 비슷하거나 같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조직의 중심을 잡아가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예기치 않은 일이 전개될 때 좀 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할 마음의 공간을 열어주는 사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으로 늘 주위를 밝혀주는 사람, 유머로 함께하는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 꼼꼼함과 치밀함으로 조직에 안전망을 치고 지켜주는 사람, 창조적 아이디어로 조직에 늘 새로움을 선물하는 사람 등 필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이들이 그때그때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서로에게 존경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로 비춰주며 함께 빛나는 고마운 존재로서.

무위의 리더십이 모쪼록 교실 안에서도 펼쳐질 수 있길 소망해본다. 무질서와 혼란스러움 속에 놓이게 될 때 두려움에 의지해 어떤 말과 행동을 하기보다 윌리엄 피치의 이 말을 기억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도록 허용해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을 허용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자의 성품대로 살아가게 한다’는 노자의 말이 의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