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서 신라인이 쓴 토지 문서 ‘목간’ 발견

by

둑 쌓은 뒤 이익분담금 납부 기록
1차 94자 판독…6세기 중엽 추정

http://img.khan.co.kr/news/2019/12/09/l_2019121001001062000089201.jpg
목간에 쓰인 글자. ‘감말곡’이라는 마을의 논답 7결과 ‘둑(堤) 위의 1결’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결(結)과 부(負), 곡(谷)과 답(畓), 제(堤)…. 1500년 전 신라인들이 마을에 둑을 쌓아 그 혜택에 따라 일종의 이익분담금을 냈고, 그 이익분담금을 ‘결’과 ‘부’라는 토지단위로 계산했음을 시사해주는 목간(토지 문서)이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확인됐다.

이 자료는 신라의 토지제도인 결부제가 기존 문헌자료보다 100~150년 정도 앞선 시기인 6세기 중엽 시작됐다는 추정도 가능케 한다.

이 문서는 지난 3일 공개된 ‘사람 얼굴 모양의 토기’와 함께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목간(길이 74.2㎝) 형태로 출토됐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1차 판독에서 굽은 나무의 표면을 다듬어 만든 총 6면에 쓴 약 94자의 글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9일 밝혔다.

전문가들은 ‘6세기대에 작성된 토지관리 문서 목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곡(谷)’과 ‘답(畓)’, ‘제(堤)’ 등의 글자가 주목된다. ‘곡’자의 경우 골짜기(谷)를 배경으로 형성된 일정한 집단을, ‘제(堤)’는 둑(제방)을 의미한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목간의 전체적인 내용은 곡(谷)이라는 작은 마을 단위로 둑을 쌓고 쌓은 둑(堤)에 따라 생긴 저수지의 혜택을 입는 마을 주민들이 일종의 이익분담금을 ‘결’과 ‘부’라는 토지 단위로 계산한 문서”라고 풀이했다.

논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우리 고유 한자인 ‘답(畓)’자를 썼다는 것도 흥미롭다. 561년(진흥왕 22년) 건립된 경남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에 처음 등장하는 글자인데, 이번 목간에서도 보였다. 김재홍 국민대 교수는 “물 수(水)와 밭 전(田)을 합한 답(畓)은 원래 수전(水田)을 의미하는데, 신라에서는 두 글자를 합쳐 고유 한자인 ‘답(畓)’자로 썼다”고 밝혔다. 마치 요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상 주고받는 줄임말 같은 단어를 1500년 전 신라인들이 썼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목간의 제작연대가 창녕 척경비와도 비슷한 6세기 중후반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신라 특유의 토지제도인 결부제와 관련된 토지 면적 단위 ‘결(結)’자와 ‘부(負)’자가 나온 것도 의미심장하다. 1결은 농가 한 가구에 나누어 주기 위한 면적(대략 1만5447.5㎡·4700평) 정도다. 한 짐을 의미하는 ‘1부(負)’는 결의 ‘100분의 1’이다. 결부제와 관련된 자료는 ‘7세기 신라’부터 잇달아 나온다.

<삼국사기> ‘열전·김유신’에서는 “663년(문무왕 3년) 김유신에게 500결을 하사했다”고 했다. 가장 확실한 1차 사료는 신라 중앙정부가 각 지방 현황을 촌단위로 기록한 신라촌락문서(일본)이다. 이 문서에 ‘결’과 ‘부’가 등장한다. 이 문서의 연대를 두고는 695년(효소왕 4년)~875년(헌강왕 1년)까지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이중 ‘695년설’을 밀고 있는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이번 목간자료에는 밭 몇 전, 논 몇 전 등을 할당하는 내용이 나온다”며 “신라 중앙정부가 이미 6세기부터 지방 행정체계를 장악하고 사용처에 따라 세금 등을 할당하는 지배방식을 완성했음을 알려주는 획기적인 자료”라 해석했다. 김재홍 교수는 “이번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의 2차 사료에 기록으로만 등장했던 신라 7세기 초 중반의 ‘결’자와 ‘부’자가 실물자료로 나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