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오프사이드]선수 혐오와 차별, 유럽 축구장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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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럽의 축구장이 인종차별로 혼란스럽다. 수년 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축구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행위를 근절하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이 끔찍한 악행이 근절될 수 없는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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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사례를 보면, 지난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프레드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연거푸 모욕을 당했다. 코너킥을 차려는 그에게 맨시티 팬은 원숭이 소리를 내며 조롱했고 어디선가 라이터까지 날아왔다. 성난 얼굴을 한 동료 린가드가 프레드는 감싸안으며 위로했지만 프레드의 고통은 단지 라이터에 맞은 외상만은 아니었다. 안정을 되찾은 프레드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어두운 면이 있다. 지금은 2019년이다. 피부색, 머리카락,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프레드를 모욕한 남성은 경찰 조사를 받았고 맨시티는 “우리 홈구장 출입을 영원히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상대팀 감독인 과르디올라도 경기 후 프레드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위로했다.

이러한 일들이 맨시티 구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0월21일, 맨유가 리버풀을 상대로 벌인 홈경기 도중 맨유 팬이 리버풀 수비수 알렉산더 아널드를 향해 거친 욕설과 인종차별 폭언을 자행했다가 즉시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시즌권 소유자인 이 남성은 맨유의 즉각적인 조치에 의해 영구적으로 올드 트래퍼드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9월에는 웨스트햄 팬이 홈구장 출입 금지령을 받았고 애스턴 빌라 등 많은 구단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레드가 또다시 역겨운 말과 추악한 행동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발롱도르(유럽남자축구선수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네덜란드 축구의 ‘레전드’ 마르코 반 바스텐은 생방송 도중 과거 히틀러 나치 시대의 악명 높은 구호 ‘지크 하일(Sieg Heil)’을 외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난 11월23일, 네덜란드 축구팀 헤라클래스를 이끄는 독일인 감독과의 인터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그가 축구장 안팎에서 보여준 오랜 활동으로 보건대 ‘나치 추종자’라 볼 만한 여지는 적다. 본인도 네덜란드인 리포터의 어색한 독일어 발음을 놀리기 위해서 그 표현을 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네덜란드 선수들은 축구장에서의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킥오프 후 1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이었다. 온라인 축구게임사 EA에서는 ‘피파 20’에서 반 바스텐을 삭제하기로 결정했고 폭스스포츠도 1주일간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 10월 하순, 잉글랜드 프리미어 사무국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교육, 단속, 조사 등의 프로그램까지 가동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마스터는 “우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설 자리는 없다”고 공언했으나, 현실은 오히려 가중되는 양상이다.

11월4일, 손흥민이 에버턴의 미드필더 고메스를 저지하려다 불상사가 벌어진 바로 그 경기에서도 에버턴의 관중이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벌였다. 구단은 “그런 행동은 우리 경기장, 우리 클럽, 지역사회 또는 우리 경기 안에 있을 수 없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공인구를 향해 그들은 차별의 언어를 쏟아내고 혐오의 행동을 벌였다. 축구를 모욕하고 선수와 팬들을 모욕하고 자기 자신마저 쓰레기통에 처박는 행동이다.

최근 이런 일이 급증한 것은 유럽 전역에 반난민과 반유럽연합 역풍이 불어닥친 결과로 보인다. 브렉시트 혼란 속에서 지역주의를 우선시하고 있는 잉글랜드나 극우정당동맹이 득세한 이탈리아에서 이 같은 일이 연거푸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브렉시트 혼란에 빠진 모든 잉글랜드 사람이, 극우정당에 가입한 모든 팬들이 다 라이터를 던지고 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회적 원인을 별도로 하고, 그 행위자는 가려내서 처벌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그와 같은 인종차별 행동이 벌어지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현상적으로는, 우리의 여러 경기장에서 유럽과 같은 인종차별이 확연히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이 밀집하는 유럽의 경기장과 우리의 현황을 기계적으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본질은 ‘혐오와 차별’이고 나라마다 그것이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지금 바로 당장 인터넷의 스포츠 뉴스 댓글들을 보라. 그야말로 ‘댓망진창’이다. 한 해 농사가 끝난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얼마 전 숨 막히는 시즌이 마무리된 프로축구까지, 그리고 겨울 시즌의 배구와 농구 등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단순한 비아냥을 넘는 인격 모독이 벌어진다. 중국이나 일본의 팬과 선수들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써서는 안될 모욕적인 언사가 난무한다.

팬들의 발언이 즉발적이라면 그 종목에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랜 위계질서에 따른 폭력적 발언이나 차별의 시선이 구조적으로 드리워져 있다. 생중계 와중에도 거친 말을 하는 감독이 있을 정도이니 일반 팬도 거의 없는 유소년 경기에서는 말해 무엇하랴. 여기에는 단순히 감독과 선수 혹은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만 있는 게 아니다. 체육계열 학과에서 ‘여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 및 혐오와 배제 또한 심각하다. 방송 중계에서 ‘용병’이란 말이 사라지고 ‘외국인 선수’라는 말로 ‘순화’되었다 해서 우리의 스포츠에서 혐오와 차별이 줄고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용병’이란 말도 일부 중계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듯하니,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