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직 안 맡는 총수일가·반대 안 하는 이사회 ‘재벌의 지배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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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회피 총수일가, 계열사 이사 등재율 ‘17.8%’…
이사회는 99% 원안대로 가결 ‘사실상 거수기’
공정위 ‘기업집단 지배구조’ 발표

재벌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그룹 내 회사가 평균 10곳 중 2곳에도 못 미치는 등 총수일가가 법적 책임을 피하며 대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사회는 일감몰아주기로 이어질 수 있는 대규모 내부거래를 모두 원안대로 가결해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하는 등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가능성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발표한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보면 지난해 5월부터 지난 5월까지 총수 있는 49개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 소속 1801개 계열사 중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321개(17.8%)다. 지난 5년 연속 분석 대상에 오른 21개 집단의 총수일가 이사 등재율은 2015년 18.4%에서 올해 14.3%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한화·CJ·신세계·미래에셋·네이버 등 10개 대기업집단은 총수와 총수 2·3세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가 하나도 없다. 총수일가가 이사 등재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회피하며 그룹을 경영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율은 지주회사(84.6%)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인 주력회사(41.7%) 등 그룹 지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들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사 주식을 가진 공익법인(74.1%)에서도 높다.

공익법인은 총수일가가 그룹을 우회 지배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의 규제를 받는 회사(56.6%)에서도 이사 등재율이 높은 편이다.

회사 경영을 감시·견제하는 이사회는 안건의 99.64%를 회사가 올린 원안대로 가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안 가결률은 총수 있는 집단(99.6%)이 총수 없는 집단(97.0%)보다 높았다. 이사회 내 내부거래위원회 설치율(41.6%)은 지난해 조사 때보다 6%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 스스로 50억원 이상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한 통제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사회에 올라온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755건)이 모두 원안대로 통과되는 등 내부거래위원회가 형식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내부거래 안건의 80.9%도 수의계약 사유를 기재하지 않는 등 이사회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가격과 법적 쟁점 등 거래 관련 검토사항이 기재되지 않은 내부거래 안건도 68.5%다. 정창욱 공정위 기업집단과장은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에 해당될 소지가 있어 점검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