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만큼 매력적인 게 책인데...."
[인터뷰] 서울 연희동 '밤의서점' 김미정씨
by 최하나(hnjh98)청소년 필독 도서, 권장 도서. 어린 시절 줄곧, 아니 어쩌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는 읽어야 하는 도서 목록이 있다. 그래서일까. 책이라고 하면 썩 유쾌하고 흥미로운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여기, 책을 좀 다른 측면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연희동에서 '밤의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미정 점장, 일명 '밤의점장'이 그 주인공이다. '밤의서점'은 얼마 전 종영한 MBC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태까지의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러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눈이 갔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이벤트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달 11일, 밤의서점에서 그녀를 직접 만났다.
밤의점장은 출판사 문학동네와 푸른숲에서 편집자로 10년을 일했다. 그 후 번역 일을 병행하며 지금은 밤의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 편집장이었던 그녀는 왜 사양 산업이라 불리는 서점 일을 시작하게 된 걸까.
"이 서점을 열기까지 굉장히 긴 스토리가 있어요. 처음에는 어떤 분이 저한테 서점 매니저로 와 주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그때 저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을 하고 있었고 또 책을 좋아하니까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열심히 관련 강의도 듣고 차곡차곡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사정이 생기셔서 서점을 못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제가 서점 일에 대해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너무 하고 싶어진 거예요. 단념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 제가 서점을 열게 됐죠."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서점이라고 했지만 사실 꽤 오랜 시간 몸 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니, 그녀의 퇴사 이유가 더욱 궁금해졌다.
"직업을 본인과 동일시 하면 굉장히 힘들어져요. 그런데 제가 출판사에 다니는 10년 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지만 일로써 너무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일을 즐기지 못했어요. 그때 당시에는 책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책은 저를 너무 힘들게 하는 존재였어요. 그래서 퇴사 후 번역가로 일하다가, 서점 운영도 같이 하게 됐어요. 서점을 하고 있는 지금의 저는 굉장히 즐거워요. 예전의 저였다면 완벽한 문장으로 완벽한 책 소개를 하려고 하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부분에서는 많이 느슨해졌어요."
그녀가 편집자 일을 하는 동안에는 '슈드비(Should be) 콤플렉스'가 있었다. 슈드비 콤플렉스는 '~을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뜻한다. 하지만 서점 점장이 된 지금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본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특히 손님들과 교류하면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밤의점장이 손님들과 교류하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들이 있다. 생일 문고, 고백서가, 이야기 상자와 같은 이벤트들이 그 방법이다. 같은 날에 태어난 작가의 책을 모험하듯 선택하는 '생일문고', 책과 편지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서점이 대신 전해주는 '고백서가', 이야기 하나를 쓰면 다른 손님의 이야기 한 편을 선물하는 '이야기상자' 등 모두 책을 통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밤의서점의 특별한 방법이다. 신선하면서도 낭만적인 이 이벤트들을 진행하는 이유를 물었다.
"책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책'이라고 하면 유익하니까 읽어야 하고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독서교육을 해야 하고... 뭐 이런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책도 게임이나 넷플릭스만큼이나 매력적인 하나의 서비스이자 매체인데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책을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낭만적으로 또 아날로그적으로 다시 재발견하게 해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여태까지 책에 대해 의무적인 차원에서만 얘기했다면 고백 서가나 생일 문고와 같은 이벤트를 통해서 '아, 책이 정말 매력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거네! 나도 그거 해보고 싶어' 또는 '나 작가 잘 모르는데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라니 한번 사보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도록, 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요."
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는 그녀의 생각은 서점 인테리어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금 세대는 대부분이 책보다는 터치스크린에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저희 때만 해도 책으로 해답을 구하는 세대였어요. 그래서 책을 어떻게 근사한 것으로 보여줄까 고민할 때 이벤트뿐만 아니라 밤의서점 인테리어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희 서점에 방문하시는 손님들께 책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거든요.
서점에 들어섰을 때 책 냄새, 나무 냄새를 통해서 후각이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오프라인 서점의 장점이 책의 물성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까슬까슬한 종이 재질, 매력적인 타이포, 조명 아래 책이 말을 거는 듯한 느낌. 이렇게 오감으로 책을 느낄 수 있을 때 책이 굉장히 아름다운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이곳, 밤의서점에서만큼은 책이 지겹고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 매력적이고 감각적인 매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밤의서점 한 켠에는 필사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 또한 비슷한 맥락이라고 한다. 요즘은 대부분의 업무를 워드로 작성하지만, 이곳에서는 책 속의 글자를 직접 따라 써보면서 책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새롭게 책이라는 걸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책이라는 건 이미 어렵고 먼 존재인데 책을 매력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계속 고민해서 이런 이벤트들을 만들고 있는 거죠."
책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손님을 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김미정 점장님. 그녀는 지금도 끊임없이 책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지,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이 질문이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어서... 20대의 저는 어느 서가에 두 시간씩 죽치고 앉아서 책을 읽던 문학소녀였어요. 그때는 책이 도피처이자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존재였다면 지금 저에게 책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또 확장되는 공간인 것 같아요. 나중에 50대가 되면 또 그 의미가 변할 것 같아요."
그리고 밤의서점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저희가 생각하는 밤의서점은 '마음의 빛을 찾아가는 한밤의 서재'와 같은 곳이에요. '마음의 빛이라는 게 뭐지? 되게 추상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이곳에 온 분들이 책을 통해서든 혹은 이 공간의 분위기를 통해서든 자신과 마주하고 나갈 때는 '아, 그 일 그동안 미뤄뒀는데 한번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가셨으면 좋겠거든요."
책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것과 더불어 책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과도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밤의점장. 어쩌면 우리는 책을 '읽어야만' 하는 존재로 한정 짓고 책 본연의 매력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내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