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소통·신뢰’…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처리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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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고준위 폐기물?

원자력 발전소에선 우라늄을 원료로 전기를 생산합니다. 그리고 발전을 다 하고 나면 다 쓴 우라늄, '사용후핵연료'가 남습니다. 이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은 위험 물질입니다. 방사선 수준이 높다는 의미에서 '고준위 폐기물'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는 동해안과 남해안에 모두 24기의 원자로가 있습니다. 원자로 숫자로만 따지면 세계 6위, 원전 강국입니다. 동시에 별도의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이 없는 관리 후진국이기도 합니다. (처분장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파키스탄과 슬로베니아 등 여섯 나라인데, 이들의 원자로 숫자는 5기 이하입니다.)

그럼 이 핵 쓰레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원전 부지 내부의 '임시' 저장 시설에 있습니다. 문제는 이 임시저장시설이 조만간 가득 차게 된다는 점입니다. 당장 경주 월성 원전은 2021년 포화상태가 되고, 한빛원전 2026년, 고리원전 2027년 등 다른 원전의 여유 시간도 그리 길다고 보긴 힘듭니다. 처분장 건립 논의는 그래서 중요하고, 또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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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에 임시 저장된 고준위 폐기물

작지만 큰 동굴, 핀란드 온칼로

고준위 폐기물 처분 문제는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입니다. 그래서 원전 운영 나라들은 임시 저장 시설이나, '중간 처분 시설' 등 각자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 나라는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발트해에 접한 에우라요키 시의 오킬루오토 섬에 세계 최초로 고준위 폐기물 영구처분장인 '온칼로'를 짓고 있습니다. 공사는 2016년 시작됐고, 2020년대 중반쯤 완공됩니다.

온칼로는 현지 말로 '작은 동굴'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큰 동굴입니다. 지하 400m 아래에 2백만 세제곱미터 규모의 공간이 펼쳐집니다. 고준위 폐기물이 영구 보관될 터널은 모두 200개, 터널 길이를 더하면 70㎞에 달합니다. 여기에 다 쓴 연료봉을 담은 특수 보관 용기인 '캐니스터' 3,250개가 저장됩니다. 그리고 가득 차면 영원히 폐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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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칼로 내부 개념도

방사선 차단은 4중으로 이뤄집니다. 먼저 다 쓴 연료봉을 강철 용기에 담은 뒤, 방사선을 차단하는 구리 용기로 한 번 더 감쌉니다. 여기에 점토의 일종인 벤토나이트를 덧씌우고, 단단한 화강암 암반 속에 묻어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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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강철 용기로 사용후핵연료를 감싸고, 왼쪽 구리 용기로 한 번 감쌉니다.

보관 기간은, 방사선이 해가 없어질 때까지인 10만 년. 인류 역사를 감안하면 10만 년은 말 그대로 '영원'입니다.

거대한 규모만큼 공사비와 운영비도 거대합니다. 시설 운영사인 포시바에서는 공사비 20억 유로, 우리 돈 2조 6천억 원이 들고 연간 운영비도 수백만 유로가 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원자력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싼 건 분명합니다만, 폐기물 처리까지 발전의 전 주기를 고려하면 원전 발전 비용이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공비결은? 투명한 정보공개와 소통, 그리고 신뢰

온칼로와 관련해 더 놀라운 건 주민 반응입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장은 분명 혐오시설이지만 정작 그 지역 주민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정부와 운영사의 설명을 믿는다고 했고, 값싼 전기라는 원전의 혜택을 누린 만큼 뒤처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곳 주민들이 특별히 착해서 이런 말을 한 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절대적 신뢰' 덕분에 시설의 안전성을 믿고 있는 것뿐입니다.

정부와 지자체, 시설 운영사 등 각 주체는 주민 동의가 가장 중요한 점임을 잘 알고, 이를 위해 주민과의 소통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해당하는 STUK에서는 직원들이 대중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으며 스스로 소통과 담을 쌓는 국내 모습과는 정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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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원자력안전위원회’ STUK

핀란드 정부와 운영사 관계자, 주민 등에게 고준위 영구처분장 입지가 결정되고 공사가 시작할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이 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술적 요인'이 아니라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이에 기반을 둔 '소통', 그리고 '신뢰'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다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도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문제에 대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격한 갈등 속에 결국 결론을 못 내린 채 책임을 다음 정부로 떠넘겨왔습니다.

공을 넘겨받은 이번 정부는 '뜨거운 감자'를 다룰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고준위 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 준비단'을 운영했고, 준비단에서 만든 결정을 토대로 올해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했습니다.

하지만 출발부터 조짐은 좋지 않습니다. 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놓고 반발이 터져 나오는 등 갈등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서로의 대화 상대를 바라보는 불신이 아주 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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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팻말 속 문구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보여줍니다.

원전을 계속 운영하든, 탈원전으로 전환하든, 이 땅에 원자력 발전소가 돌아가는 이상 사용후 핵연료는 계속 발생하고, 또 어딘가에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처치 곤란한 이 고준위 폐기물을 어디에 어떻게 처분할지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물론 수많은 갈등이 벌어질 겁니다. 시간도 아주 오래 걸릴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한 걸음씩 앞으로 가야만 합니다. 핀란드의 성공 사례는 우리나라가 꼭 배워야 할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