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인종주의·혐오 지우고 더 깊어진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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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톰의 발라드
빅터 라발 지음·이동현 옮김
황금가지 | 184쪽 |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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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첫 장에 이렇게 쓰여 있다. “엇갈리는 심경으로 H P 러브크래프트에게 바친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거장으로 불린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러브크래프트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를 그려내는 데는 천재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공포는 ‘혐오’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민자와 유색인종에 대한 증오가 그의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레드 훅의 공포> 역시 그렇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빅터 라발이 <레드 훅의 공포>를 완전히 뒤집어 다시 쓴 ‘역버전’이다. 빅터 라발은 어린 시절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러브크래프트의 성취는 그대로 인정하되, 그의 작품 속에 자리 잡은 인종주의와 혐오의 뼈대는 완전히 부숴보기로 작정한 듯하다.

두 소설의 얼개는 같다. ‘재즈의 시대’로 불리던 1920년대 뉴욕, 형사 토머스 말론은 밀교와 이문화에 심취한 노학자 로버트 수댐을 추적하다가 레드 훅에 있는 그의 저택에서 인간세계를 초월하는 공포를 마주한다. 수댐은 이민자들과 기괴한 파티를 벌이다가 파국에 이른다.

<레드 훅의 공포>는 말론의 관점으로 구성돼 있다. “죄악으로 물든 가무잡잡한 얼굴” “아시아계 쓰레기들”과 같은 혐오 표현이 난무한다. <블랙 톰의 발라드>는 말론 대신 흑인 청년 토미 테스터의 관점으로 서사를 반복한다. 라발은 이민자들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물화된 존재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치는 인간으로 되돌려놓았다. 원작의 기괴함이 훼손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포가 더 깊어졌다. 라발은 이 책으로 영국환상문학상과 셜리 잭슨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