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다른 삶을 위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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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만나 80년대 노동운동에 관한 인터뷰를 했었다. 거대한 배를 만드는 거친 아저씨들의 무용담 같은 이야기를 듣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최근에 가장 슬펐던 일이 뭐였을까요?” 두 시간 가까이 자신이 어려서부터 수많은 고생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인생을 용감하게 살아왔고 가족과 동료들을 위해 헌신해 왔는지를 자랑하던 그가 갑자기 ‘흐읍’하며 숨을 삼키더니 한참이 지나 신음하듯 말을 내뱉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난달에 철골이 떨어져서 동생 놈이 깔려 죽었어.” 그는 사고를 수습하며 결국 삽으로 동생의 시신을 긁어내듯 거둬야 했다. 남은 유족들에게는 다행히 시신은 잘 거뒀으나 혹여라도 힘들어질 수 있으니 보시지는 말라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그 참혹한 경험은 현장에서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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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와 ‘비용절감’의 신화 속에서 죽음은 하루에도 수천 켤레씩 닳아 버려지는 목장갑처럼 흔했다. 그는 이어 새벽에 출근할 때마다 눈을 비비며 잠이 덜 깬 상태로 꾸벅 인사하는 딸의 얼굴을 보며 반드시 오늘 밤에도 너의 얼굴을 보겠다고 결심한다고 말했다. 말하던 그도 찍던 카메라도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것은 20세기의 일이었고, 노동자가 우리도 인간이라는 그 뻔하고 당연한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되던 시절이었다. 대한민국은 그들의 골절된 뼈와 빼앗긴 생의 빛을 토대로 쌓아올려진 눈먼 마천루에 다름 아니었다.

그후 오늘. 그렇게 일터에서 허망하고 비참하게 삶을 끝내는 것이 숙명이라고 불리던 그때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며칠 전 우리는 김용균 청년비정규직의 죽음 이후에도 지난 1년여간 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1200명의 노동자 이름이 빼곡히 덮인 경향신문 1면을 참담히 마주 봐야 했다. 이게 우리 모두의 잘못인가? 이윤과 특권과 불공정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터와 일터와 생명이 함부로 훼손되면 안 된다고 우리는 수없이 촛불을 들었다. 깃발을 들고, 손을 잡고 어렵게 조금씩 세상을 바꿔왔다. 그 희망찬 걸음 속에서 우리는 사소하게 행복해했고, 끝내 버티기 위해 조그만 승리에도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하지만 친구들. 우린 여전히 또 많은 친구들과 이웃들을 잃고 있다. 행복하게 일할 권리, 법에 정해진 대로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죽지 않고 집에 갈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해야 하는 이 비참한 노동현장의 굴레에서 우리는 어떻게 탈옥할 것인가. 무엇보다 바로 지금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믿거나 자신에겐 결코 그런 불행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한 기대감으로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우리들의 헛된 바람을 멈추는 결심을 해보는 것은 아닐까? 지난 1년간의 그 암담한 주검들 곁을 눈을 감고 지나치며 나는 결코 그런 죽음 곁에 머물지 않겠노라고 최선을 다해, 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일자리를 향해 힘차게 걷는다 해도 결국 누군가는 다시 저 죽음의 숫자를 채워야 하는 이 불의. 어린아이의 두 손을 잡고 너만은 절대로 불행할 수 없으니 지금 너의 모든 기쁨을 포기하고 책상 앞에 죽은 듯 앉아 머릿속에 지식을 암기해내라고 해도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이 우리 곁을 여전히 맴돌고 있는 이 구조와 법을 바꾸라고 함께 목소리 높여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불행을 차단할 유일한 방법은 그 불행의 함정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힘을 합쳐 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의 힘겨운 투쟁 역시 그들이 애초 전망 없는 직업을 택해서가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하는 자들 때문이지 않은가. 오늘도 비정규직으로 위험한 노동현장을 향해 새벽부터 출근하는 이들의 불안한 환경은 그들의 숙명이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자본의 구조 때문이 아닌가. 그들을 비호하는 정치와 법과 관료들 때문이지 않은가. 12월7일 고 김용균 청년비정규직 1주기 추도식을 준비하며 ‘김용균 있는 김용균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비정규직 없는 세상, 모든 노동개혁 후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아가는 이유다.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종로로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