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의 세계읽기]거의 모두가 불편해하지만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홍콩 시위’
1842년 청은 1년여에 걸친 아편전쟁 끝에 난징조약을 맺고 홍콩을 영국에 공식 할양했다. 마약 교역을 둘러싼 영국과의 갈등 탓에 2차 아편전쟁이 벌어졌지만 청은 다시 패했다.
구룡반도와 스톤커터스섬을 추가로 내줘야 했다. 영국은 1898년 홍콩의 새 영토를 중국으로부터 99년 동안 조차했다. 홍콩대학이 설립되고, 항만시설과 카이탁 공항 등 인프라가 들어섰다.
홍콩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광둥어와 함께 영어를 배웠다. 금융과 무역항만을 중심으로 홍콩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번영을 누렸다. 약속한 99년이 끝난 1997년 7월1일 홍콩은 중국에 귀속됐다. 중국은 그러나 영국과 영국이 대표하는 서구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영국과의 합의하에 또 다른 50년을 기한으로 홍콩기본법을 제정했다. 홍콩인에 의한 통치(港人治港)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양대 원칙으로 삼아 홍콩 주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인정키로 했다.
■ 홍콩 귀속 22년, 다가오는 중국
영국 통치시대 태어난 홍콩 주민들은 종래 생활로의 복귀를 갈구했다. 본토에서 이주해온 중국인들을 2등 시민으로 무시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중국과 중국인들은 홍콩 할양 시점을, 이후 100년 동안 치욕의 역사가 시작된 원점으로 본다. 중국의 내정 간섭은 은밀하게 진행됐다. 홍콩 정부가 범죄인인도법 개정을 시도, 홍콩인이 중국에 인도될 길을 열려고 하자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홍콩 문제가 역사적으로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 문제와 결이 다른 배경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직면한 많은 문제들도 연원을 따지려면 제국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홍콩 시위를 먼나라 이야기로만 바라보기에는 지리적·역사적·문화적 체감지수가 다르다. 어쨌든 중국이 아편전쟁 패배 끝에 영국에 빼앗긴 땅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악화를 우려하는 서구의 개탄에 중국이 ‘네 눈의 들보’라며 되받는 연유다.
홍콩 시위대는 이번에 분명 작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중국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비난하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승리를 축하하기에는 어딘가 께끄름한 측면이 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적어도 홍콩 문제에 관한 한 중국과 서구의 입장을 일도양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벌어진 민주화 시위의 궁극적인 목표는 직접·비밀·보통선거로 완전한 자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수반 직선제를 허용치 않은 것은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런던에서 파견된 총독이 다스렸다. 둘째는 추세 때문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이전에도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중국의 입김은 조금씩 은밀하게 더 강화됐다.
■ 홍콩 시위대의 작은 승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 홍콩 민주주의 관련 법안 2건에 서명했다. 홍콩 시위대가 지난 3월15일부터 세계에 호소해온 숙원의 일부가 이뤄졌다. 중국 외교부는 다음날 “노골적인 패권행위”라면서 강한 반박성명을 내놓았지만, 미국 입법·행정부의 결정을 뒤집을 묘안은 없어 보인다. 홍콩 주민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태평양 건너로부터 든든한 후원을 받음에 따라 8개월째 계속되는 홍콩 시위는 중요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트럼프가 서명한 ‘홍콩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은 범민주진영이 압승을 거둔 24일의 구의원 선거에 이어 또 하나의 승리였다. 범민주진영은 452석 중 347석(76.8%)을 얻었다. 올봄 시위를 촉발시켰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이미 지난 7월 홍콩 정부가 백지화함에 따라 항복선언을 받아낸 바 있다. 둥젠화 행정수반의 정부가 추진했던 ‘보안법’ 제정을 저지했던 2003년 대규모 시위에 이은 개가다. 그러나 과연 지속가능한 승리일까. ‘우산혁명’으로 불린 2014년 ‘도심점령(Occupy Central)’ 시위는 당국의 의미 있는 양보를 끌어내지 못했다.
홍콩 시위대가 거둔 작은 성공 앞
중국의 행태, 비난만 할 순 없어
민주화 목표는 행정수반 선출 등
직접·비밀·보통선거 ‘완전 자치’
하지만 영국도 직선제는 불허
홍콩인권법은 인권탄압에 가담하거나, 책임이 있는 홍콩 당국자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미국 국무부는 홍콩 주민들의 자유와 자치가 후퇴할 경우 이를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다른 한 가지 법은 최루가스와 고무탄환 등 시위진압 장비의 홍콩 수출을 금지한 법이다.
외교안보 사안을 철저하게 거래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트럼프에게 홍콩 관련법안은 마뜩잖은 돌출 악재였다. ‘역사적 I단계’에 도달한 미·중 무역협정의 최종 서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상·하원이 각각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인 표결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봉쇄했기 때문이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별 관심이 없는 트럼프는 법안에 서명하면서도 “시진핑 주석과 홍콩 주민들을 존중한다”면서 본의가 아님을 애써 내비쳤다.
중국 외교부는 28일 성명에서 “홍콩인권법은 노골적인 패권 행위로 중국 정부와 인민은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반드시 단호하게 반격에 나설 것이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후과는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홍콩 정부 역시 ‘극도의 유감’을 표하면서 “이들 법안은 홍콩 내부 문제에 간섭하는 것으로서, 아무 필요도, 근거도 없다”고 비난했다. 자본시장은 트럼프와 셈법이 비슷했다. 중국의 강한 반발로 미·중 무역협상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이날 전 세계 증시는 하락세를 보였다.
■ ‘제2의 톈안먼’은 아직 없다
지난 11일 시위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홍콩 경찰은 처음으로 실탄을 발사했다. 사격 장면이 페이스북에서 생중계되면서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선 특이하게 진압경찰의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보다 자살자가 많았다. 지난달 22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가 시위와 직접 관련된 것으로 파악한 자살자가 9명이었다. 한 자살자는 “홍콩이 필요한 건 혁명”이라면서 당국의 폭압에 항거하는 메모를 남겼다. 폭력적인 진압으로 최루가스가 난무했지만 경찰의 직접적인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은 의외로 적었다.
전례 없는 경찰 공격적 진압에도
제2의 톈안먼 ‘선’은 넘지 않아
기본법 시한, 2047년 6월 종료
언젠가 또다시 시위가 벌어질 것
‘끝이 정해진 험로’…안타까워
4일 홍콩이공대 2층에서 의식불명인 상태로 발견돼 결국 사망한 대학생(22)은 건물 3층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14일에는 시위대와 주민들 간의 충돌과정에서 70대 청소부가 벽돌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8월부터 홍콩과 마주한 선전의 종합경기장에는 장갑차와 군용트럭을 앞세운 중국 무장경찰 수천명이 시위 진압 훈련을 했다. 제2의 톈안먼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근거다. 다행히 중국 무장경찰의 개입은 없었다. 하지만 홍콩 경찰의 공격적인 시위 진압 양태와 중국 무경의 등장은 전례없는 장면들이었다. 캐리 람 행정수반의 홍콩 정부는 지난달 4일 비상정황규제조례를 발동해 시위대에 복면(마스크) 착용 금지령을 내렸다. 안면인식 폐쇄회로(CC)TV로 시위자들의 신상을 파악, 평생 추적할 수단을 마련했다. 중국은 분명 이번 홍콩 시위에 어느 때보다 강한 대처 의지를 내보였지만 톈안먼으로 되돌아가는 ‘선’은 넘지 않았다.
홍콩 시위에선 이달 중순 현재 2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발생한 볼리비아 시위에선 군·경의 발포로 23명이 죽고 700명이 다쳤으며, ‘신자유주의 우등생’ 칠레에선 17명이 죽고 2500여명이 다쳤다. 그럼에도 서구 언론은 볼리비아나 칠레에 비해 강한 어조로 진압 당국을 비판했고, 각국에서 연대 집회가 열렸으며, 미국 의회는 유독 민주주의의 수호천사를 자처했다.
■ 중국 불편한 세계, 세계가 불편한 중국
미국 연방의회를 제외한 각국이 홍콩 사태에 대해 내놓은 공식입장이나 성명은 대부분 영혼이 없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했다. ‘우산혁명’ 당시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식민지배의 원죄를 안고 있는 보리스 존슨 내각의 영국은 시위대와 진압당국의 폭력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양측의 진정과 자제를 당부했다. 프랑스 외교부는 평화적 해법을 찾기 위한 대화를 주문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지난 8월 진압당국의 ‘고강도 폭력’을 우려하면서도 “(시위대가) 마스크를 쓰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4일 “홍콩 상황이 조속하게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홍콩 시위와 그 너머 중국을 대하는 세계의 현주소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모두가 불편해하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토론하기를 꺼리는 상황을 뜻하는 ‘방안의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라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다. 한국은 학생들이 대학 구내 곳곳에 붙인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가 중국 유학생들에 의해 훼손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외부에서 보기엔 불편한 사실들이지만, 진압경찰의 폭력 앞에 놓인 홍콩 주민들에게는 절박한 문제다. 수십년 동안 군사독재의 탄압과 압제에 맞서 투쟁한 끝에 민주주의를 쟁취한 동아시아 분단국의 입장에선 남의 일이 아니기도 하다. 홍콩 시위대가 한국의 과거 민주화 시위에 강한 연대를 갖는 것도 자연스럽다.
홍콩 주민은 기본법에 따라 자치와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가 있다. 중국은 마땅히 이를 보장해야 한다. 중국 반환 22년이 지나면서 각국 정부는 ‘방안의 코끼리’를 불편해하면서 목소리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기본법의 시한은 오는 2047년 6월 말이다. 행정수반 직선제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홍콩 주민들은 여전히 거리로 나서고 있다. 언젠가 더 큰 규모의 시위가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끝이 정해진 험로’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