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인류세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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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미국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가장 극적인 변화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수가 25.5% 줄어든 것을 꼽았다. 국립교육통계센터가 매년 데이터를 집계한 이래 특정 전공 선택자가 이렇게 빠르게 줄어든 적은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낯선 현상은 아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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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와 결과도 짐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 미국 학생들은 “제프리 초서의 시를 읽는 것보다 코딩을 배우는 게 취업전선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그들이 찾아낸 해결책은 역시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이었다. 같은 기간, 이공계 전공자는 2배가 늘었고, 특히 컴퓨터과학과 보건의료 전공이 급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40세가 되면 인문계 전공자들이 이공계 전공자들의 연봉을 따라잡는다는 연구가 있다. 비결은 스토리텔링 능력이며, 그것과 연관된 이해와 소통의 힘이다.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라는 책에서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내가 문학적 상상력을 옹호하는 정확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좋음’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윤리적 태도의 필수적인 요소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스바움은 특히 (주류)경제학에 비판적이어서 “경제학은 소설이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는 인간의 지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보다 복합적이면서 철학적으로 타당한 토대들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선 인문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언설마저 사라진 듯하다. 인문학은 코딩이나 상품 개발에 필요한 “콘텐츠”로 축소됐고, 너무나 “쉬운” 학문이어서 STEM 전공자는 맘만 먹으면 인문학을 섭렵할 수 있지만 거꾸로 인문학 전공자가 STEM 지식을 이해하거나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긴 어렵다는 게 대학생은 물론 지식사회의 상식이 됐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환경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인문학을 다시 소환한다. 특정분야에 아우라를 제공하는 접미사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기존 인간중심의 인문학과 거듭 발전하는 자연과학을 통합하면서 “인류세(Anthropocene)”를 사는 인류의 방향을 제시하는 학문으로 격상했다. 인류세는 200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크뢰첸이 제안한 용어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지구의 물리적 변화를 일으킬 만큼 중대해짐에 따라 1만년 전 시작된 홀로세(현세)와 지질학적 연대를 분리하자는 주장이고, 이미 학계의 공인을 얻었다.

인류세의 인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2010년대 이후 등장한 환경인문학은 생태위기가 과학기술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지향과 가치, 나아가 인간 자체에 대한 물음과 관련이 있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환경문제를 기술, 경제학, 정책으로 해결하는 데서 한계에 봉착했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해결이 어렵다는 위기감과 함께, 인문학이 환경문제에 개입하고 대중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시급해졌다.

스웨덴 MISTRA 재단이 2013년 발표한 ‘환경인문학의 등장’ 보고서는 환경인문학이 “자연과학, 사회과학에 역사적 관점을 제공하고, 과학적 결과의 해석을 도우며, 사회적 가치를 분명히 하고, 새로운 기술과 관련해 생기는 윤리적 문제를 제시하고, 공공프로그램의 수행을 수월하게 하고,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장애를 제거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와 환경 시민정신에 필요한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가치를 육성한다”고 정의했다.

환경인문학은 1970년대 시작된 환경철학, 1980년대부터 역사학의 하위분야로 자리 잡은 환경사, 1990년대 초반 제도화된 생태비평 외에 인류학, 지리학, 정치학, 미디어연구, 젠더연구,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으로 구성된 지적 구조물이다. 이쯤 되는 학문은 개인의 자각이나 치유에 눈높이를 맞춘 대학 바깥의 인문학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이미 UCLA, 스탠퍼드, 위스콘신, 프린스턴, 예일, 하버드 등 미국의 주요 대학과 중국의 베이징대는 학제적 환경인문학 과정을 개설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초·중·고 교육과정에 기후환경교육을 의무화해줄 것을 집권여당과 교육부에 요청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청소년 기후소송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9월 서울시와 공동으로 ‘생태문명 전환도시 서울’ 선언을 하고, 환경교육을 확대한 생태전환교육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지식의 발원지인 대학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전 세계에서 1만여개 고등교육기관이 젊은이들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식, 기술, 능력을 가르치겠다는 서한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한국의 대학은 한 곳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