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파트 ‘편법 증여’ 만연, 부당한 대물림 뿌리 뽑아야

정부가 올 8∼9월 서울에서 신고된 아파트 거래를 조사한 결과 부모로부터 편법으로 증여받은 돈으로 주택을 구입한 사례가 500여건 적발됐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조사팀이 우선조사 대상에 오른 1536건을 정밀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532건(34.6%)에서 증여세 등 세금을 탈루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조사대상 3건 가운데 1건이 편법 거래였던 셈이다. 특히 이들 거래의 절반 이상이 집값이 치솟고 있는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지역에 집중돼 있었다. 주택을 이용한 편법적인 증여와 대출을 통한 부의 대물림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적발된 사례를 보면 곧바로 ‘편법 증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18세 미성년자(학생)가 11억원짜리 아파트를 전세금 5억원을 끼고 사면서 부모와 친족 4명으로부터 6억원을 분할 증여받은 경우이다. 6억원을 증여할 때 증여세율이 30%인 반면 1억원으로 쪼개면 세율이 10%로 낮아지는 점을 노린 것이다. 또 한 40대 부부는 전세금 11억원을 낀 22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5억5000만원은 증여받고, 남은 5억5000만원은 부모로부터 무이자로 빌렸다.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22억원짜리 집을 샀다. 또 부모가 받은 개인사업자 대출금을 아들의 주택 구입 용도로 쓴 경우도 있었다. 이런 거래가 강남 4구나 속칭 ‘마·용·성’ 지역에 집중된 것도 유의할 대목이다. 가격 상승폭이 크고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 편법이 심하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차용증 없이 이자도 받지 않고 집 살 돈을 보태주면 증여에 해당한다. 편법 증여로 아파트를 사는 일은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되지만 투기도 조장한다. 실제 거주할 것도 아니면서 미래 가치를 위해 사두려는 투기행위이다. 아파트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투기를 조장하고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방치해서는 안된다.

편법 증여에 의한 부의 대물림은 공정사회의 적이다. 빈부 격차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런 행위는 더욱 용납해서 안된다. 국세청은 이번에 통보받은 532건에 대해 탈세 여부를 조사해 과세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편법 거래를 조사하고 본래 목적대로 쓰이지 않은 대출을 회수하는 등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