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잠 깨어나는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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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9일) 경향신문 1면에 실린 두 장의 사진이 눈길을 잡았다. 하나는 크레인으로 무덤의 덮개돌을 들어올리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덮개돌을 치운 묘실 내부에 굽다리 접시, 목 긴 항아리, 철화살촉, 마구류 등 유물이 수북한 사진이었다. 토기들은 뒤엉켰으나 깨짐이나 부서짐 없이 온전했다. 1500년간 도굴을 면한 창녕 고분군 63호분의 발굴 장면이다.

63호분을 비롯해 고분 250여 기가 산재한 경남 창녕은 4~6세기 비화(非火)가야의 땅이다. 비화가야는 창녕과 달성 현풍 일대를 포괄하는 가야의 소국이다. ‘비화가야’라는 이름은 <삼국유사> ‘5가야’조에 나온다. 비화가야는 진흥왕 16년(555)에 신라에 복속됐다. 얼마 뒤 왕이 순수한 뒤 ‘창녕 진흥왕 척경비’를 세웠다. 이 때문에 창녕은 신라 문화권으로 인식되었다. 비화가야에 대한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수많은 고분들, 그리고 그 안에서 출토된 토기나 금속제 유물이 없었다면 창녕이 비화가야 영토였음을 입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야는 42~562년 낙동강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화권을 일군 고대국가다. 가야 말고도 가라, 가락, 구야, 가양 등 명칭이 다양하다. 일연은 금관가야를 비롯한 6가야가 있다고 <삼국유사>에 썼다. 그러나 금관가야 역사서인 ‘가락국기’ 말고는 문헌이 없어 전체 가야의 역사를 파악하기 어렵다. 연구가 안되면서 가야는 ‘잊혀진 왕국’이 됐다. 심지어 임나일본부설로 왜곡되기까지 했다. 학계의 연구성과는 가야연맹체가 30여 곳에 달했고, 이 중 가락국(김해), 대가야(고령), 아라가야(함안)만이 고대국가로 성장했다는 정도다.

‘잊혀진 왕국’ 가야가 깨어나고 있다. 역사문헌의 공백을 메우는 발굴조사의 덕분이다. 2017년 현재 가야유적 2487건 가운데 668건이 발굴 또는 조사됐다(문화재청 자료). 문재인 정부가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에 넣으면서 발굴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결과 가야의 영역은 전남북 동부와 부산 일부 지역으로 확장됐다. 문화재청은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 중이다. 다음달 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가야유물 1000여 점을 모은 특별전 ‘가야본성 - 칼과 현’이 개막한다. 잠에서 깨어나는 가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