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막 속 그곳에 가자, 영화 속 핫플레이스 홍콩여행
by 이우석[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한류 이전에 아시아엔 향류(香流)가 있었다. 이름난 홍콩영화가 한편 개봉하면 전 아시아가 들끓었다. 리사오룽(李小龍)은 물론, 청룽(成龍), 훙진바오(洪金寶), 장궈룽(張國榮), 저우룬파(周潤發), 류더화(劉德華), 량차오웨이(梁朝偉) 등이 영화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성 배우만 있는게 아니다. 80~90년대 한국의 까까머리 중고생들의 책받침은 왕쭈쉔(王祖賢), 장만위(張曼玉), 린칭샤(林靑霞), 양쯔충(楊紫瓊), 글로리아 입 등 홍콩 여배우들이 죄다 장악했다.
스크린, 로드쇼 등 한국판 영화잡지는 늘 홍콩영화에 대한 기사를 비중있게 다뤘다.
영국 식민지 시절인 20세기 초부터 발달한 홍콩 영화산업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을 정도다. 무협, 쿵후 등 액션 장르부터 코미디, 멜로, 느와르. 그리고 강시 시리즈 등 호러 장르까지 폭넓은 내용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불야성을 이루는 네온사인 속에 불을 붙인 지폐로 제사를 지내는 이들, 동서양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홍콩의 독특한 분위기와 당시 국내에선 보기 힘든 고층빌딩, 그 뒷골목 풍경이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국내에 전해졌다.
1989년 국내 초콜릿 브랜드 ‘투유’는 장궈룽을 등장시켜 매출 300배 신장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때 광고 송출 시간을 묻는 문의가 폭주, 아예 신문에 광고 시간을 따로 공지했다 한다.
최근 몇 년간 옛 인기 홍콩영화가 줄줄이 재개봉하며 추억을 되새기는 30~50대 뿐 아니라 뉴트로(New-tro) 개념으로 확장, 10~20대 등 전 세대에 다시 인기를 끌고있다.
영화 속 추억과 잔상(殘像)이 진하게 새겨진 영화 속 홍콩의 명소들을 따라가 봤다.
●올드 타운 센트럴의 마법의 계단,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홍콩 젊은이들의 이별과 만남을 그린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1994년작) 속 나른한 오후, 짧은 커트 머리의 왕페이가 길게 뻗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짝사랑하는 경찰 663, 량차오웨이의 집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그의 집을 훔쳐보는 장소.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라는 수식어답게 올드타운 센트럴의 중요한 거리들을 빠짐없이 지난다. 건물과 직접 이어지는 통로들도 많아 원하는 목적지 바로 앞까지 여행자들의 걸음을 배웅한다. 올드타운 센트럴에서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여정의 중심으로 삼고 발길가는 대로 골목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
나이트 라이프의 명소, 란콰이퐁과 홍콩에서 가장 트렌디한 거리, 소호 사이 드넓은 블록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타이퀀(Tai Kwun)은 과거 경찰서였다. 1864년에 지어진 건물들은 1995년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약 10여년의 레노베이션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었다.
세계적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역사적 유산을 고스란히 살리는 동시에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와 공연장을 새롭게 덧붙여 우아한 건축적 풍경으로 완성시켰다. 광둥어로 ‘큰 집’, 즉 경찰서를 의미하는 이름과 바(Bar)로 변신한 옛 감옥 등은 건물이 가진 홍콩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다.
●홍콩 최고의 전망 스팟, 빅토리아 피크=홍콩의 중국 반환 시점인 1997년 직전을 배경으로 혼란스러운 젊은이들의 애절한 로맨스를 그린 ‘유리의 성’(琉璃之城, 1998년작)은 싱그러운 서기와 여명의 모습에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명의 목소리가 더해져 더 아련하게 다가오는 ‘Try to Remember’ 노래로 유명한 작품이다.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사랑을 확인하는 두 주인공 뒤로 화려한 홍콩의 야경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홍콩 섬 최고의 고도, 높이 약 552m 타이펑산에 위치한 전망대에 서면 숲과 바다 그리고 고층 빌딩이 한 눈에 들어온다.
●피크서클워크=전망이 한눈에 들어와 19세기부터 영국인들의 거주지로 사랑받았으며 별다른 교통 수단이 없던 시절 영국인들이 가마와 인력거를 타고 올랐던 빅토리아 피크. 1888년 개통한 산악 기차 피크 트램은 45도가 넘는 급경사로 오르는 홍콩의 명물로 정상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피크 트램으로 빅토리아 피크에 올랐다면 홍콩 주민들의 산책과 조깅 코스로 사랑받는 ‘피크 서클워크’로 내려오면 좋다. 피크에서와는 다른 각도의 빅토리아 하버뷰와 함께 홍콩섬 남부의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내려오면 영화 속 홍콩대학교로 이어진다.
●치파오,그리고 카페=홍콩의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2000년작)는 관능적이면서 우울한 소재를 농밀하게 그려내는 왕자웨이 감독의 미장센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자 2016년 BBC가 선정한 21세기 영화 100선에 2위로 선정될 정도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레드, 그린, 블루 등 각각의 색들이 가진 의미를 더한 적절한 공간과 소품의 배치로 영상미와 더불어 메타포(Metaphor, 은유의 힘)를 더했고 장만위는 무려 23벌에 달하는 다양한 색상과 무늬의 치파오 컬렉션으로 관객들의 매혹시켰다.
량차오웨이와 장만위가 마주 앉아 건조한 듯 상대 배우자들의 불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골드핀치 레스토랑(Goldfinch Restaurant)는 아쉽지만 지난해 사라졌다. 하지만 치파오를 입고 어느 홍콩의 차찬탱 카페에 앉아 영화 제목처럼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볼 수는 있다.
중국의 전통의 디자인과 현대적 모티브를 결합시켜 세계적인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거듭난 상하이 탕(Shanghai Tang, 上海唐)은 영화 색, 계(色,戒)의 주인공 탕웨이가 입어 더욱 유명해졌다. 명품인 상하이 탕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몽콕의 야시장을 찾거나 홍콩 치파오 대여 및 사진 촬영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성 마가렛 성당=천장지구(天若有情 1990년작)의 성지 순례지, 성 마가렛 성당(St. Margaret’s Church)은 극중 주인공인 류더화와 우첸롄이 이별을 예감하고 마지막으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던 곳.
어둠이 깔리는 거리를 뚫고 오토바이가 달린다.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우첸롄이 하얀 턱시도를 입은 류더화가 탔다. 이들이 끝내 이루지 못할 사랑을 기념하기위해 성당으로 향하던 장면은 가슴 아리도록 생생하게 남았다.
홍콩섬 북단 코즈웨이베이에 위치, 성녀 마가렛(St. Margaret Mary Alacoque)을 기리는 아시아 최초 교회로 1925년 세워졌다. 높게 치솟은 빌딩숲속 나지막하고 고즈넉한 성당은 종교를 떠나 홍콩인들에게 마음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해피 밸리 경마장=1841년 엘리트들의 오락거리로 시작되어 영국인들이 모이던 사교장이었던 이 곳은 이제는 홍콩 현지인들뿐만이 아니라 외국인 여행객들까지 찾는 명소가 되었다. 홍콩영화에 단골로 등장한다.
홍콩 사람들의 80%가 참여하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 성장한 경마는 흥겨운 분위기 속 열린다. 매주(여름 제외) 수요일 밤, 이 곳은 축제장으로 변신한다.
홍콩관광청은 여러 영화 속 명소에 더해 홍콩의 새로운 인기 시설을 함께 소개했다.
●싱크와인=2016년 가을, 홍콩의 한 와인 바에서 우연히 만난 두 명의 프랑스인이 와인에 대한 열정으로 의기투합, 홍콩 최초 소믈리에가 운영하는 스페셜티 와인 바, 싱크와인(ThinkWine)이 소호의 중심부에 오픈했다.
미슐랭 원스타이자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15위를 차지한 프렌치 비스트로, Belon의 헤드 소물리에였던 Jean-Benoit과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 Rech by Alain Ducasse 홍콩과 파리의 헤드 소물리에였던 Romain이 소개하는 와인들은 ‘Chateau to Table’을 완성해주는 프랑스 직수입 와인들부터 홍콩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빈티지 와인들까지, 600여종의 컬렉션을 선보인다.
어포더블하면서도 섬세한 맛의 와인들과 더불어 페어링 메뉴들을 선보이는 싱크와인은 와인 테이스팅 또는 마스터 클래스와 같은 이벤트를 더해 와인 애호가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다.
●티파니 블루박스 카페=여기도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고요한 맨하탄의 새벽, 티파니 매장 앞에 노란 택시에서 내린 오드리 헵번이 마치 파티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모습에 크로와상과 커피를 먹으며 티파니의 진열장 너머 보석에 넋이 빠진 장면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프닝이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17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성들의 마음을 훔쳐온 세계적인 쥬얼리 브랜드, 티파니가 2017년 뉴욕 5번가에 처음 선보였던 ‘티파니 블루 박스 카페’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과 함께 세계 두번째로 홍콩에 문을 열었다.
직사각형의 투명 또는 티파니 블루 컬러의 스테인 글라스 조각들이 실버 프레임으로 짜여져 마치 유리 하우스처럼 테이블들을 감싸 안고 이를 통한 자연광은 티파니만의 세련된 분위기를 더해준다.
오드리 헵번이 매장 밖에서 먹던 크로아상 같은 클래식 아침 메뉴와 브런치, 티파니 블루 박스 모양이 올라간 시그니처 블루 박스 토스트, 티파니 애프터눈 티 그리고 신선한 제철 식재료에 독창성을 담은 식사 메뉴까지. 모든 메뉴들은 티파니 블루 컬러 차이나에 실버 식기류와 함께 서빙된다.
영화 제목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현실이 되는 공간, LBD(Little Black Dress,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고 나만의 영화를 만들어 볼 수 있다.
●K11 MUSEA(뮤제아)=한 때, 홍콩을 찾는 이유가 쇼핑이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이유는 음식, 예술 등으로 변화 및 더해져 왔다. 홍콩이어야만 하는 그 이유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새롭게 선보였다.
쇼핑몰과 디자인 센터의 중간 지점에 있던 K11이 추구해오던 사람, 자연, 디자인을 보다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K11 MUSEA(뮤제아)는 전 세계의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 환경 운동가 등 100여명이 참여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건물 외벽을 둘러싼 식물, 내부 곳곳의 식물 그리고 루프톱의 작은 농장들로 구현된 지속 가능한 미래, 즉 사람과 자연을 생각한 공간에 예술과 문화를 더하고 200여개의 다양한 브랜드 숍들이 입점해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MoMA(뉴욕 현대 미술관) 디자인 숍과 미국 럭셔리 온라인 숍 모다 오페란디의 첫 번째 아시아 쇼룸, 알렉산더 맥퀸의 첫 홍콩 콘셉트 부티크 등 패션과 뷰티 뿐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쇼핑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오페라 씨어터’라 불리는 35m 높이 아트리움이다. 천장의 원형 창을 통한 자연광과 1800개의 전구들에 둘러싸인 골드 볼 그리고 현지 장인들과 ‘LAAB’의 건축가들이 손으로 그린 거대한 유화 패널이 어우러져 마치 대성당이나 은하계에 발을 내디딘 듯한 느낌을 주는 이 곳은 홍콩의 새로운 인스타그래머블 스팟으로 각광받고 있다.
40여점이 넘는 예술품들과 엘름그린 & 드라그셋, 삼손 영, 에르빈 부름, 서도호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과 북유럽 가구 콜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아보카도를 주재료로 건강과 트렌드를 동시에 잡은 런던 Avobar의 첫 아시아 매장과 영국 왕실티, Fortnum & Mason 레스토랑, Fortnum’s 181을 포함, 70여개의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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