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주년-원로 영화인에게 듣다] '60년대 황금기' 김수용 감독
by 뉴시스입력 2019.11.29 19:33
어느덧 흐른 세월이 흘러 90살이 된 그는 최고 원로 영화인으로 꼽힌다. 1960년대 신상옥, 이만희, 유현목 감독과 한국영화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끈 김수용 감독이다.
최근 뉴시스가 만난 그는 연로한 나이로 거동은 어렵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1919년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공개된 후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는 화려한 날개를 달고 비상중이다.
김수용 감독은 한국 영화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다. 그는 일흔 중반인 2006년도까지 신작을 내고자 했다. "신영균을 주연으로 각본을 썼는데 신영균이 못하겠다고 했다. 최은희는 하겠다고 했는데… 제목은 '만월'(둥근달)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만들고 싶다"라며 아쉬워했다.
◇ 군 복무 중 영화와 처음 인연 맺어김수용 감독은 특이하게도 군에 복무하던 중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다. 그는 1946년부터 서울사범학교 연극부 부장 연출가로 활동하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이후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 배속되며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는다.
김 감독은 "22세부터 30세까지 복무했다. 어둡고 침침하던 시기다. 즐겁게 사회를 보는 단편영화 15편을 만들었다. 짧은 건 10분, 긴 건 40분 정도짜리 였다"라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당시 문관(군인의 위계나 군적을 가지지 않은 관리)으로 근무하던 양주남 감독의 '배뱅이굿'(1957)의 조감독으로 참가하며 본격적으로 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양주남 씨가 '배뱅이굿'을 찍으러 간다길래 내가 군에 가서 '봐야 발전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해 조감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한해 뒤인 1958년 그는 코미디 영화 '공처가'를 통해 감독으로 정식 데뷔한다. 공처가(아내에게 눌려 지내는 남편)인 곰탕집 대성관 주인 '장소팔'이 맞은편 곰탕집이 성황을 이루고, 딸의 혼사와 관련해 아내와 뜻지 맞지 않은 상황에서, 기발한 생각으로 장사도 잘 해내고 딸의 혼사도 원만히 해결해 공처가 신세를 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는 감독 초기 '공처가'와 같은 코미디 영화를 다작하며 승승장구했다.
"어느 마을에 전쟁이 지나가고 우중충한데, 뚱뚱하고 손가락질 당하는 아줌마가 그 마을을 평정하는 이야기다. 막 (물건을) 던지고 팔이 부러지고 그런다. 그게 히트를 쳤다. 이후 30편은 쉬지도 못하고 찍었다. 내가 찍은 건 다 우스운 거였다. 시대상이 어두울 때 아닌가. 그런 때 영화가 사회분위기를 띄을 수 있다."
◇ 갑자기 찾아 온 감독으로서의 시련
그런 그의 작품 흐름은 1963년 작 '굴비'를 통해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김 감독은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갯마을'(1965)을 비롯해 '야행'(1977), '화려한 외출'(1978) 등을 내놓는다. 영화 '굴비'는 김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야심 차게 만든 작품이지만, 표절 의혹을 받고 결국 이 꿈은 좌절된다.
김 감독은 "라이벌 제작자가 일본 영화 '도쿄 이야기'(감독 오즈 야스지로)와 비슷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억울해서) 하와이 도서관까지 가서 그 영화를 찾아봤다. 그 영화와는 다르다. 일본 꺼는 아이들을 도시로 보낸 두 할아범과 할멈이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얘기다. 일본 꺼는 애들을 도시로 보냈는데, (내 영화는 그렇지 않다) 내가 하와이 영화제에 가서 다 얘기했다"라고 여전히 억울한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영화 '굴비'의 표절시비 이후 한동안 영화 대신 소설 작업에 집중했다. 그는 "50편 정도의 소설을 썼다. 굴비 때 너무 표절이라고 해서 충격을 받아 소설을 썼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내 이를 극복하고 총 109편(추정)의 영화를 촬영했다. 가장 애착이 있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 똑같다. 흥행이 잘 되면 (좋았겠지)"라고 말하면서도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를 언급했다.
그는 집에 보관 중인 포스터를 가리키며 "저게 김일성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다. 흑백영화로는 제일 동원 수가 많았다. 28만명을 동원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280만명도 안 될 때다. 저걸 촬영하고 인천에 올림푸스라는 호텔을 통째로 샀었다"라며 흡족해 했다.
◇ 현재 영화계, 선정성 벗어나고 주체성 갖기를
그는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교수로 영화 꿈나무들을 키웠다.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학과 특임강사,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특임교수도 역임했다. 이에 대해 그는 "(강단에서) 한 20년 정도 가르쳤다. 송일국, 조민기도 내가 가르쳤다"라고 말했다.
최근 본 영화 중 괜찮은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2018년작 '버닝'(이창동 감독)을 꼽았다. 김 감독은 "버닝은 영화 같다"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선정성에만 매몰된 일부 영화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최근) 인간성 자체가 변질됐다. 영화도 완전히 변질됐다. 그냥 치고 박고 뚝딱거리려고 모든 기물을 다 동원한다. 근데 그런 거 말고 더 인간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어떨까.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영화가 없다."
"'기생충'이 왜 좋을까. 자기 선배들이 좋다고 하면 꼼짝없이 좋다고 한다. 왜 좋냐고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한다"
영화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청춘인 그는 영화학도들에게 꼭 이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주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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